[기고]지역특화작목, 지역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 되는 길

이승돈 농촌진흥청장
2026.06.15 11:32

이승돈 농촌진흥청장

올봄, 사무실에서 만난 이명화 참외 명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참외 가격이 떨어지면 속수무책이었지만, 이제는 싱가포르와 홍콩까지 나갑니다" 그 한마디에 지역특화작목 정책이 만들어 낸 변화가 담겨 있었다.

농촌진흥청은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와 함께 참외 수경재배와 수직재배 기술, 장거리 선박 수출을 위한 MA 포장과 저온저장 기술을 지원해 왔다. 그 결과 성주 참외 생산액은 2020년 3,856억 원에서 2024년 6,927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고, 생산성은 1.7배 높아졌다. 수출국도 15개국으로 확대됐다. 한 지역의 대표 작목이 지역경제를 이끄는 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변화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전국 각지의 47개 지역특화작목연구소는 1990년대부터 지역의 대표 품목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성과에 주목해 2019년 '지역특화작목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국가와 지방이 함께 지역 농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지역특화작목은 단순히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농산물이 아니다. 지역의 기후와 토양, 농업인의 경험, 연구기반, 시장 가능성이 결합해 경쟁력을 갖춘 작목이다. 여기에 품종 개발, 재배기술, 저장·가공, 유통·수출 기술이 더해질 때 지역의 대표 농산물은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으로 성장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이 주도하고 국가가 뒷받침하는 구조다. 지역은 현장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국가는 연구개발과 기술보급 역량을 갖고 있다. 지방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농촌진흥청이 과학기술을 더하는 방식이 현장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성과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2024년 지역특화작목 생산액은 10조 6,000억 원으로 2020년 7조 8,000억 원 대비 34.8% 증가했다. 가공판매액도 2조 5,000억 원에서 3조 4,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특화작목 농가의 평균 농업소득은 전국 평균의 6.5배 수준에 달한다. 이는 지역특화작목이 단순한 원물 생산을 넘어 가공과 상품화, 유통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주 참외 외에도 현장 곳곳에서 성공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전북 수박 농가는 불임꽃가루 채집 자동화와 보온터널 기술로 노동력을 97% 줄이고 경영비를 32% 절감했다. 강원에서는 자체 개발한 옥수수 종자로 수입 의존도를 낮추어 종자 주권을 지켜냈고, 충남 논산의 '킹스베리' 딸기는 세계 시장에서 한국 딸기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전남 유자는 씨없는 유자 품종과 가공·저장 기술을 바탕으로 수출형 가공산업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지역특화작목 육성에 참여한 농업인 만족도가 3년 연속 상승해 75.7%를 기록한 것은 이 모든 변화에 대한 현장이 체감하는 변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농촌진흥청은 제2차 지역특화작목 연구개발 및 육성 종합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1차 계획이 대표 작목을 발굴하고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였다면, 앞으로의 2차 계획은 지역특화작목을 지역 농산업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도약의 단계가 될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데이터 기반 스마트농업 기술을 접목해 생산성과 품질 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을 넘어 가공·유통·수출까지 연결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한 지역이 스스로 유망 작목을 발굴하면 국가는 연구개발과 기술보급, 현장 실증과 사업화를 연계 지원하는 지역 주도형 협력체계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지역에 경쟁력 있는 산업이 있어야 사람이 머물고 청년이 돌아온다. 농업이 지역의 미래를 책임지는 산업으로 자리 잡을 때 지방소멸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 이명화 명인처럼 자신의 땅에서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농업인이 많아질 때 지역은 살아난다. 지역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 지역의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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