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박양수]시장 개척에서 시장 지배력으로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연구원장
2026.06.24 02:00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연구원장

한국 경제의 성장사는 곧 수출의 역사였다. 좁은 내수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수출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은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수출다변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이제는 수출 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기계 등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제조 품목 수는 글로벌 수출시장의 96%(시장규모 가중 시 99%)에 달하며 220여 국가에 진출해 있다. 사실상 세계 대부분의 시장에서 공급자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처럼 새로운 국가를 찾아 수출시장을 넓히는 전략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수출은 외연 확대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개별 품목의 글로벌 실질 점유율은 2010년대 후반 이후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가 시장 확대 자체보다 기존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와 시장점유율 제고에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어디에 팔 것인가'보다 '어떻게 더 많이 팔 것인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시장 점유율 제고를 위해서는 기술혁신을 통한 경쟁우위 확보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기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차세대 반도체, 미래모빌리티, 피지컬AI, 바이오와 같은 신산업을 육성하고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기후기술 개발을 선도함으로써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많은 국가들은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공급망 재편으로 자국 내 제조기반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뿐 아니라 건설, 엔지니어링, 정보통신기술, 도시개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산업단지 조성, 전력·물류 인프라 구축, 스마트시티 개발 등 산업생태계 수출 전략도 유효할 것으로 본다.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와 민관협력사업(PPP)을 전략적으로 연계하면 동 전략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글로벌 경쟁의 무게중심은 개별 기업에서 공급망 전체로 이동하고 있다. 상의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첨단산업 품목은 수출 증가와 함께 수입도 동시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도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중 패권경쟁과 경제블록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전략산업 중심의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핵심 원자재와 부품의 안정적 조달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한국 수출은 이미 양적 확대의 단계를 넘어섰다. 앞으로는 시장을 넓히는 것보다 시장을 지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기술혁신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기후기술과 첨단산업을 선점하며, 산업생태계 수출과 공급망 주도권 확보에 나서야 한다. 수출다변화가 과거의 성장 전략이었다면, 시장침투율 제고와 공급망 경쟁력 강화는 앞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