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제조건 중 하나가 물이다. 정부가 동복댐 증고와 댐 여유 물량, 발전·농업용수 전환으로 하루 65만t이 넘는 산업용수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의구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영산강 보를 놓고 존치와 해체를 오락가락 하지 않았다면 용수에 대한 해법찾기도 보다 수월했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은 애초 홍수와 가뭄, 수질과 수량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영산강 승촌·죽산보는 취약한 수량을 보완하고, 농업·생활·공업용수와 홍수 조절을 염두에 둔 시설이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시절 일부 수질 지표 악화를 강조하는 보고서와 환경단체의 목소리 등이 합쳐져 '적폐' 프레임을 씌우는 결과를 낳았다.
영산강보는 2021년 국가물관리위원회의 보 해체·상시개방 결정, 2023년 윤석열 정부의 결정 취소, 2026년 이재명 정부의 재자연화 재논의 예고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운명이 달라졌다. 기준이 된 것은 인프라의 필요성이 아니라 정치적 진영논리였다. "보가 있으니 녹조가 생긴다"는 비과학적 서사가 힘을 얻었다.
영산강은 유역 면적과 유량이 다른 3대 강에 비해 작다. 물이 적을수록 오염물질은 더 농축되고 자정능력은 떨어진다. 그 결과 가뭄·홍수·수질 악화의 피해는 인근 주민들의 몫이다. 이 때문에 과거 박준영 전남지사가 소속정당인 민주당의 당론이 4대강 사업 반대였음에도 "영산강 살리기 사업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물·환경·에너지·산업 정책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친환경' 가치는 중요하지만 산업용수와 지역 개발, 기후 리스크를 함께 고려하는 계획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보와 댐, 저수지, 하수 재이용 시설은 구호가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와 장기 수급 전망에 근거해야 한다.
영산강 보에 대한 의사결정은 4대강 사업 찬반을 떠나 인프라와 자연, 산업과 환경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한국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데이터와 상식에 기반한 물관리의 탈정치화가 이뤄졌더라면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많은 비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산강 보를 둘러싼 논쟁이 진영을 넘어선 성찰과 새로운 물 정책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