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문제에 정통했던 한 신문사의 선배는 밤늦게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오늘 가판신문 기사를 봤는데 상의할 수 없느냐"는 청와대 고위직의 전화였다. 이 선배가 쓴 신문의 1면톱 제목은 '판교신도시에 1만가구를 더 짓자'였다. 다음날은 토지공사의 공공택지 입찰일이었다. 이미 판교 택지의 용적률이 80%대로 계획된 상태여서 그 기사는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새벽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입찰 중지를 지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판교의 주택 공급수는 원래 계획보다 4000가구 정도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내내 30여차례 부동산대책을 쏟아냈다. 부동산 투기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세금·대출 규제로 압박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공급 확대에도 힘썼다. 국민임대주택을 사상최대인 47만호를 승인했다. 판교·화성·김포·파주 등 수도권 2기 신도시 네곳을 건설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국회의 권력구도에 따라 입법속도가 달라졌다. 취임초기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말할 정도로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여대야소로 바뀌자 종합부동산세법을 통과시켰다. 2005년 재보궐선거로 다시 여소야대 상황이 되자 부동산법은 난항을 겪다가 한나라당이 불참한채 열린우리당·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 등 4당만이 참석해 강행처리했다. 그래도 노무현 정부는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을 정도로 반대세력과 대화와 타협을 하려는 시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부 언론과 소송전을 하는 등 대립도 했지만 합리적 대안 제시엔 열린 자세를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첫 집은 분당신도시 조성때 세워진 양지마을 1단지 금호아파트다. 이 대통령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억 6000만 원에 매입했다. 이 대통령은 "아이들 키워내며 젊은시절을 보낸 집이라 돈보다도 몇배나 애착있는 집"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약속한대로 이 집을 팔았다. 하지만 집을 매각한 방식이 여론을 자극했다. 매수인이 잔금을 치를 때까지 17억7000만원의 근저당을 잡고 소유권을 넘긴 것이다. 매수인은 이달말까지 유효한 재건축조합원 지위를 받고, 이대통령 입장에선 기한내 매도한 '윈윈 게임'이지만 대출 규제에 막힌 일반인들의 비난여론이 거세다.
23일 대통령이 주재하는 부동산정책대토론회가 열린다. 이 대통령은 이날 말을 아끼고 되도록 들어야 한다.특히 게시판에 올라온 수많은 국민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여당이 다수를 장악하고 있더라도 국회가 대통령의 SNS 발언을 여과없이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과 협의하고 조율하는 것도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의 8·31 대책이 법제화 이후에도 한나라당 소속 지자체장의 집단 반발로 무력화된 전례를 기억해야 한다.
영화 '만약에 우리'는 불황인 극장가에 꽤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다.
보육원 출신의 여주인공 정원이 "고시원에 앉아있는데 조그만 창문으로 해가 손바닥만하게 들어오더라"고 말하자, 남주인공 은호가 달동네 자취방 창문을 활짝 열며 "이 햇빛 네가 다가져"라고 외친다.
두 사람은 이를 계기로 사랑에 빠졌고 은호의 햇빛 들어오는 자취방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이들이 사랑에 빠진 계기가 집이었지만 헤어지게 된 이유도 보증금을 올려줄 수 없어 햇빛이 안들어오는 작은 집으로 이사갔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자기집은 결혼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은 청년들을 내 집 마련의 꿈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셋집을 전전하던 젊은날로 돌아가 청년들의 관점에서 부동산 정책을 들여다봐야 한다. 분당 대형평형 새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의 감격을 돌이켜보라. 젊은이들이 열심히 벌어 아파트 한채 사는 것을 탐욕적 투기로 몰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