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슈퍼컴, 9년만에 세계1위..韓반도체 경고음[투데이窓/박영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2026.07.24 02:00

중국 초당 200경 연산 최고성능 완성
반도체, 칩에서 시스템 경쟁으로 이동
한국형 슈퍼컴 개발, 시스템 강국돼야

매년 6월 독일 함부르크에서는 세계 슈퍼컴퓨터 분야 최대 행사인 ISC(International Supercomputing Conference)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발표되는 TOP500 순위는 AI와 반도체, 국방과 우주, 신약개발, 기후예측까지 국가의 미래 기술 역량을 보여주는 '기술 패권의 성적표'다.

올해 발표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중국이 9년 만에 다시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미국도 아직 달성하지 못한 2엑사플롭스(ExaFLOPS) 성능은 초당 약 200경 번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초거대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은 물론 핵융합 연구, 신약개발, 디지털 트윈, 기후변화 예측, 첨단 무기체계와 우주항공 기술까지 모두 이러한 계산 능력을 기반으로 발전한다. 이제 슈퍼컴퓨터는 연구시설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략 인프라가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이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수출 규제 속에서도 이러한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미국은 첨단 GPU와 AI 반도체, HBM, 첨단 제조장비 수출을 제한하며 중국의 AI 경쟁력을 늦추려 했다. 그러나 중국은 CPU 중심의 독자적인 시스템 설계와 초고속 인터커넥트, 병렬 컴퓨팅 소프트웨어 등을 결합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냈다. 이는 개별 반도체의 성능을 넘어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고 통합하는 역량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보여준다.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를 보면 또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은 여전히 최상위권(2위, 3위, 4위, 7위) 을 유지했고 일본은 후가쿠(9위) 이후 후가쿠 넥스트를 예고하며 차세대 AI 슈퍼컴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밀라노 부근에 반도체 공장을 늘려가고 있는 이탈리아(6위, 8위)는 10위권에 2개의 슈퍼컴을 진입시켰다. 이들 국가들은 슈퍼컴퓨터를 단순한 연구 장비가 아니라 국가 산업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바라본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면서도 우리 기술로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한 국가 슈퍼컴퓨터를 아직 갖지 못했다. 메모리에서는 세계를 선도하지만 플랫폼 경험은 부족하다. AI 시대에는 좋은 반도체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근 애플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중국산 메모리 사용 제한 완화를 요청한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이는 중국 반도체 산업이 더 이상 값싼 추격자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7일 시진핑 중국 주석은 상하이에서 열린 '2026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개막식에서 "AI 발전은 한 국가에 의한 독주가 아니라 국제적 협력을 통한 교향곡이 돼야 한다"며 미국의 영향력에 정면으로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가 하면 중국 최대 D램 제조사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오는 27일 상하이 증권 거래소에 대규모 기업공개(IPO)를 발판으로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선두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한국 메모리 산업에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신호다.

반도체 산업은 지금 '칩 경쟁'에서 '시스템 경쟁'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CPU와 GPU, HBM, CXL 메모리, 전력반도체, 초고속 네트워크, 냉각기술, AI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하는 나라가 새로운 승자가 된다. 엔비디아가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이유도 GPU 하나 때문이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AI 플랫폼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제 전략을 바꿔야 한다. 메모리 세계 1위라는 성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국형 AI 슈퍼컴퓨터를 직접 설계하고 구축하는 국가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국내 AI 반도체 기업의 NPU, 대학과 연구기관의 시스템 소프트웨어 역량을 연결해 '한국형 AI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AI 시스템 강국'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전략이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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