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의 핵심 경로 중 하나는 산업·수송·건물에서 화석연료를 전력으로 대체하고, 그 전력을 무탄소 전원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정유 등 제조업의 탈탄소를 위해서는 생산공정의 전력화 확대가 핵심 과제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전기요금의 가격신호가 올바르게 작동해야 한다.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합리적인 요금 수준, 투자의 예측 가능성을 지키는 안정적인 조정 속도,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계통 여력이 있는 지역으로 유도하는 지역별 가격신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수준과 상승 속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2022년 이후 산업용 전기요금은 일곱 차례에 걸쳐 약 70% 상승했다. 산업부문의 탈탄소를 위해 전력 의존도는 높아져야 하는데, 정작 전력가격은 단기간에 크게 오른 것이다. 이러한 요금 상승기에 포스코는 2023년 광양에 연산 250만톤 규모의 전기로 신설을 의결해 올해 6월 준공했다. 이 전기로는 고로 대비 탄소배출을 약 75% 줄일 수 있지만, 투자와 건설이 진행되는 사이 전기요금이 크게 오르며 전력비 부담도 커졌다. 탈탄소 설비는 계획부터 준공까지 수년이 걸리는 만큼 요금의 절대 수준뿐 아니라 상승 속도와 예측 가능성도 중요하다. 전력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면 투자 당시 예상했던 경제성이 흔들리고 후속 투자도 위축될 수 있다.
전기를 '어디에서' 소비하도록 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현재와 같이 전력의 생산지와 수요지의 분리가 심화되면 송전망 건설과 계통 보강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전국 단일요금제에서는 기업이 입지를 결정할 때 이러한 지역별 계통비용의 차이를 고려할 유인이 부족하다. 공급여력이 충분하고 계통 부담이 낮은 지역에 상대적으로 낮은 요금을 적용하면 신규 공장과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수요를 분산할 수 있다. 이는 수도권 송전망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기존 산업의 대규모 전력화 수요를 수용할 계통 여력을 확보해 탄소중립과 지역균형발전에 함께 기여할 수 있다. 시간대별 요금이 전기를 '언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신호라면 지역별 차등요금은 '어디에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신호인 셈이다.
다만 지역별 요금 차이는 실제 기업의 행동을 바꿀 정도여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10% 안팎의 요금 차등이 인력·물류·협력업체·용수·교통 인프라 등 다른 입지 조건을 상쇄하지 못하면 기존 비수도권 기업의 부담만 낮추고 신규 수요 분산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요금 할인에 따른 비용에 비해 정책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제조기업에는 급격한 요금 변동을 줄인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요금체계를, 신규·증설되는 대규모 전력수요에는 입지 선택에 영향을 줄 만큼 분명한 지역 가격신호를 제공해야 한다.
탄소중립 시대의 전기요금 정책은 단순히 요금을 올리거나 내리는 문제가 아니다. 산업의 전력화와 탈탄소 투자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요금 수준과 안정적인 조정 속도를 확보하고, 신규 전력수요가 계통 여력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실효성 있는 지역별 가격신호를 제공해야 한다. 올바른 가격신호는 탈탄소 투자와 산업 경쟁력, 전력망 효율화와 지역균형발전을 함께 뒷받침하는 강력한 정책수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