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사견)]
슈퍼사이클의 역설...메모리 경쟁격화
다시 시작되는 전세계 반도체 치킨게임
후발주자 추격, 불황사이클 대비해야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꾸면서 반도체 산업에도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D램 가격이 급등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이 수100조원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높은 가격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후발경쟁자에게 시장 진입과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든든한 자금줄이 되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이자 사이클 산업이다. 호황기에 기업들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공장 증설에 나서면 곧이어 공급과잉이 발생하고 가격이 급락하면 불황이 찾아온다. 이런 '실리콘 사이클'은 수요와 공급의 가격 곡선의 급등락 영향이다.
불황 때 선두 기업이 살아남는 법이 '골든 프라이스 전략'(Golden Price Strategy)이다. 메모리 가격을 원가 이하 또는 손익분기점까지 낮춰 후발 경쟁자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방법이다. 삼성전자 등 메모리 강자들이 과거 강력한 원가경쟁력으로 경쟁사들을 압박한 전략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메모리 가격이 너무 높다. 업계에선 '다이아몬드 프라이스'까지 올랐다는 말이 나온다. 모든 메모리 업체가 높은 가격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문제는 이 다이아몬드 가격이 후발주자에게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연료(현금)'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 허페이 창신메모리(CXMT)다. CXMT는 2016년 설립 이후 상당한 적자에도 정부 지원을 받아 D램 사업을 연명했지만 최근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흑자 전환해 숨통을 틔웠다. 글로벌 D램 시장에서 8%까지 점유율은 높인 CXMT는 추가 공장 증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기반은 D램 가격의 고공행진이다.
중국 정부의 산업정책과 자본지원이 있기 때문에 D램 가격을 낮춘다고 CXMT가 곧바로 증설을 포기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반도체 치킨게임(끝장승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후발주자의 현금창출 속도를 늦추는 것이 선두업체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시장 방어수단이다.
과거에도 메모리 시장은 여러 차례 치킨게임을 거쳤다. 미국 인텔 등이 일본 NEC 등의 공세에 밀려 D램에서 철수했고, 이후 일본 업체들은 한국의 삼성전자(247,500원 ▼21,000 -7.82%)와 SK하이닉스(1,500,000원 ▼162,000 -9.75%)(당시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추격을 받았다. 1995년 20여곳에 달했던 D램 업체는 몇 차례의 치킨 게임을 끝낸 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빅3' 체제로 재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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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사이클을 틈타 중국 CXMT가 세계 4위 D램 업체로 성장하고 있고, 숨죽이고 있던 5위 업체 대만 난야도 첨단 라인 증설에 가세했다. 슈퍼사이클로 이들이 현금을 축적하고 생산능력을 확대한다면 공급과잉의 과거 불황 사이클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최태원 SK 회장이 최근 메모리 가격이 너무 높다고 지적한 것은 세트업체와 AI 산업의 비용 부담을 걱정한 측면도 있지만 '실탄(현금)'을 확보한 후발 메모리 경쟁자과의 시장경쟁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높은 D램 가격을 언제까지 유지하는 게 옳을까.
한번에 1000조를 벌 것인가? 10년간 매년 100조를 벌 것인가는 전략의 문제다. 단기 이익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반드시 손해는 아니다. 메모리 산업에서 진짜 경쟁력은 현재의 이익률이 아니라 다음 사이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원가와 생산능력이다. 지금의 '다이아몬드 프라이스'가 후발주자의 자금줄이 된다면 선두업체는 다시 한번 가격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오늘의 높은 이익보다 내일의 경쟁자를 줄이는 것이 더 큰 이익일 수 있다. 과거 수많은 선두 기업들이 해온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