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결심[투데이窓/김중식]

김중식 시인
2026.09.07 02:00

AI시대 대비 수능 논·서술형 도입
입시개혁은 사교육전쟁 패배의 역사
학벌 만능주의 덜 국가개조가 해법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 매양 쏘는 것은 /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박남수, '새' 일부)

국가교육위원회가 2033학년도 수능부터 논·서술형 문항을 도입하겠단다. 내년 3월 확정할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2027∼2036년)에 담긴다고 한다. 이번에도 포수(국가)가 납(대입제도 개편)으로 순수(미래인재 양성)를 겨냥했는데, 상한 새(공교육 붕괴)는 피(사교육 창궐)에 젖게 될 것인가. 한국 교육정책사는 미래를 위한 국가적 도전이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역사였다.

역대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제(1969), 고교평준화(1974), 본고사 폐지(1980)는 초·중·고생을 순차적으로 '과외'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다. 민주화 이후엔 '시험 대신 전형'으로 응전했다. 수시(1997), 입학사정관제(2007), 학생부종합전형(2015) 등 공교육 강화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사교육은 시험에도 적응하고 전형에도 적응했다. 인구가 줄어도 1인당 사교육비는 계속 늘어났다. 사교육 불패를 설명하는 가설로는 지위 경쟁과 생애소득 경쟁이 유력한 듯하다.

최근 '지위 경쟁 그리고 한국의 저출산' 논문에 따르면, 자녀의 학력이 지위 획득 수단이라는 지위 경쟁 때문에 출산율조차 낮아졌다. 실제 명문대 입학은 가문의 영광이다. 1970년 정몽준(이하 직함 생략)이 서울대에 입학하자 정주영은 아들을 자랑하고 다녔다. 이병철은 "왜 우리 집안엔"이라며 말을 줄였다 한다. 87학번 이재용은 할아버지 사망(1987년 11월) 직전 한을 풀어드린다.올해 이부진과 홍라희는 아들·손자의 서울대 입학식에서 엄마 미소와 할머니 미소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부와 학력은 서로 대체되지 않는 별개의 지위재인 것이다.

생애소득 경쟁의 대표적 사례는 의대 광풍이다. 며칠 전남광주특별시 신안군에서 은퇴 의사를 월급 3300만원에 모셨다는 기사가 떴다. 4세·7세 고시, 초등 의대반도 모자라 내년이면 환갑인 필자조차 수능시험으로 의대에 도전하고 싶은 노망(또는 로망)이 살짝 생겼다. 그러니 '메디컬'('의치한약수' 학과) 쏠림은 합리적 선택이다. 문제는 모두가 합리적으로 행동할수록 사회가 비합리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의대 광풍을 탐욕으로만 꾸짖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심지어 학군지(특히 서울 대치동)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메의'(메이저 의대)경쟁과 '인서울 메디칼' 경쟁을 펼친다. '탈 대치'(지방으로 전학)해서 내신으로 전교 1등을 하거나, 대치동에 남아 수능으로 도전하겠다는 양자택일이 한창이다. 후자의 경우 수능 만점에 근접해야 하고, 총점이 비슷해도 어느 과목에서 감점됐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린다. 최상위권일수록 소수점 이하의 차이로 인생이 바뀐다. '고까짓' 수능 문항 때문에 나라가 뒤집어지는 이유다. 나름 안정화된 제도 속에서 저마다 최적화된 사교육으로 십수년간 공든탑을 쌓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변화가 불편한 것이다.

입시제도로 사교육을 이길 수 없다. 명문대 인기학과라는 학벌과 직업이 만들어내는 지위·소득 격차를 줄여야 잡을 수 있다. 대학서열화와 학벌사회의 완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 직업별 생애소득 및 고용안정성 격차의 해소, 산업구조개혁을 통한 좋은 일자리 만들기까지 함께 가야 좀 누그러질까. 교육정책은 사실상 국가개조 전략이다.

수능 논·서술 문항의 출제는 그 채점 기준이 발표되는 순간 '논술 정답' '서술 정답'을 만들어내는 사교육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답을 고르는 아이보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쓸 줄 아는 아이가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으리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이제 과녁을 겨냥하는 포수는 국가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 개개인이어야 한다.

김중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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