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속 고래' 국민연금의 양면성[정철근 칼럼/정철근]

정철근 주필
2026.10.28 02:00

작년 여야합의로 난제 연금개혁안 통과
올해 국장 비중 높였다가 최대 평가손실
정치는 제도만 설계, 운용엔 관여말아야

뮤지컬 배우 최정원(57)씨는 국민연금이 도입된 1988년부터 연금을 부었다. 고3 때 롯데월드 퍼레이드 고적대 오디션에 붙었는데 당시 대기업 직원보다 많은 월 80만원을 받았다. 그 뒤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연예인 생활을 했지만 국민연금은 한번도 빼놓지 않고 불입했다고 한다. 최씨는 배우 김성령 등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65세에 연금을 타게 되면 그 때 밥은 내가 살게"라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최정원씨는 연금 수급자중 최상위 '연금부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최씨조차 연금으로는 밥을 사긴커녕 최저생계비도 충당하기 어렵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15%는 연금을 한푼도 받지못한다. 받더라도 월 40만원 이하 비율이 40%에 이른다.

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기금이 석달 반만에 182조원 줄었다. 국민연금은 손실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주가가 최고점을 회복하긴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문제는 평가손실을 입은게 아니라 국내주식 비중을 확대한 의사결정이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졌는지다. 국회의원 출신인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정감사에서 리밸런싱(자산비중 재조정) 유예 결정에 대해 "기금운용위원회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6·3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내주식비중을 낮추는 리밸런싱을 의도적으로 미뤘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

연기금을 증시부양에 동원했다 큰 손실을 입은 사례는 김영삼 정부 때도 있었다. 1996년 12월 18일 재정경제원은 8개부처의 연기금 담당과장을 소집해 연내 3000억원의 주식을 매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운용자가 손실을 봐도 책임을 묻지않겠다는 지침도 통보했다. 1년 뒤 외환위기가 터졌고 한국 증시는 붕괴했다. 1998년 3월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주식에서 60%의 평가손실이 났다.

필자는 지난 8월 연금공단으로부터 연금 의무납부 기간이 끝났다는 통보를 받았다. 4년 뒤 64세부터 월 OOO만원을 받는다. 35년동안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사태 등 수많은 위기를 헤쳐내고 분투한 결과다.

지난해 취업한 아들은 이제 국민연금을 붓기 시작했다. 과연 내 아들은 노후에 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작년 국민연금 개혁으로 연금고갈시기는 당초 2056년에서 2064년으로 늦춰졌다. 1999년생이 65세 연금을 탈 때쯤 기금이 바닥난다는 뜻이다. 청년들이 연금제도에 불신을 갖게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금 국민연금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연못속의 고래'같은 존재다. 거대한 고래가 시장을 지킬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생태계를 파괴시킬 수 있는 양면성을 갖고있다. 프랑스 사례에서 보듯 연금제도를 바꾸기는 어렵다.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을지를 정하는 것은 세대간·소득계층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매우 정교한 작업이다. 결국 국민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정치권의 역할이다.

하지만 막대한 기금을 운영하는데 정치권의 입김이 개입해선 안된다. 전세계 자본시장을 분석하고 수익성과 안전성을 균형있게 고려해 투자하는 일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 포함 정부측 7명,가입자단체 추천 12명, 전문가 2명 등 총 21명으로 구성된다. 세계 3대 연기금을 굴리는데 금융전문가가 2명밖에 없다. 캐나다 연금 운용은 정부와 완전히 독립된 공사가 맡는다. 이사회 멤버 12명 모두 금융·투자 전문가들이다. 어떤 원칙으로 투자했는지를 투명하게 알 수 있고 성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다.

정부와 정치권은 연금제도 개혁에 이어 연기금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기금운용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이란 고래가 국내시장이라는 작은 연못을 벗어나 국제자본시장이라는 큰 바다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돈을 잘 굴려 국민연금의 생명(고갈 시점)을 연장하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전문가의 몫이다. 정치권은 연금문제 때문에 정권을 빼앗긴 유럽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내 돈이 날라가는데 용서할 유권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정철근 주필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