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7월 어느 날 서울 강북의 한 공립 고등학교 3학년 교실. 30대 후반의 남자 교사는 차고 있던 시계를 교탁 위에 풀었다. 이어 전광석화처럼 잔뜩 겁먹은 표정의 남학생의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1초에 서너 대를 날릴 정도로 그 속도는 무시무시했고, 강도 또한 만만치 않아서 학생은 맞을 때마다 주춤주춤 뒷걸음을 쳐야 했다. 학생의 뺨은 붉게 물들어갔고, 이윽고 코피가 터졌다. 콩나물 교실 안에는 살과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 교사의 욕설만이 들렸다.
그 한 여름날의 기억은 30년이 다 된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다. 고교 시절의 다른 기억은 희미해도 그 장면만큼은 뇌리에 또렷이 각인돼 있다.
그러나 그 교사가 왜 그리도 흥분한 상태에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 학생은 평소 조용하고 얌전한 친구였다. 이유야 어떻든 그것은 정상적인 체벌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폭행에 불과했고, 인간이 인간에게 행사할 수 있는 극도의 야만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그는 교사가 아니었고, 스승은 더더욱 아니었다. 학생들을 그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샌드백 정도로 여겼던 ‘가해자’였다. 아마도 그 기억의 트라우마는 그 교실에 있었던 61명의 동창생들에게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중장년에게는 흔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마다 ‘미친 X 선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교사들이 한 두 명쯤은 꼭 있었다. 그래도 그 땐 스승이라는 이유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일이 2015년 학교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폭행 장면은 고스란히 휴대폰 동영상에 담겨지고, 그 교사는 교편을 내려놔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피해 학생 부모로부터 보복을 당했거나 구속을 면치 못했을 수도 있다.
강산이 3번 바뀌었듯이 교실 안 풍경도 변했다. 아니,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교권침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학생이 교사에게 욕하거나 심지어 폭행도 서슴지 않는다. 사소한 이유로 고소하는 일도 벌어진다. 학부모가 교실에 난입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를 때리는 일도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던 말은 그야말로 옛말이다.
이 지경까지 이르자 갖가지 분석이 나온다. 입시위주의 학교교육,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가정교육, 황금만능주의 사회 등등이 이런 세태를 낳았다는 것이다.
스승을 우습게 아는 일은 대학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아닌 강사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A씨는 “수업 시간 30분을 넘겨 앞문으로 당당히 들어와 앉아서는 휴대폰을 보며 시시덕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이들이 과연 대학생인가 싶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대에서 벌어진 중간고사‘커닝 스캔들’도 넓게 보면 추락하는 교권이 빚어낸 결과다. 교수든, 강사든, 규정이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으니 공정함이 생명이어야 할 시험에서 집단적인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이 학생들에게만 돌을 던질 수는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것이 과거 ‘미친X 선생’밑에서 길들여진 부모 세대들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자기 자식을 과보호하고, 성적만 좋으면 다른 건 어찌됐든 칭찬을 해줬으며, 성공을 위해서라면 남들에게 피해를 끼쳐도 된다는 천박한 사고방식을 주입시킨 세대들 말이다.
스승의 날이 이틀 앞이다. 오늘도 식당에서는 아이들이 해맑게 법석을 떠는데 부모들은 말리지도 않은 채 잠자코 앉아 있다. 과연 이 아이들이 장차 학교로 가서 선생님들을 존중하고 올바른 가르침을 배울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