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홍익인간' 삭제… 교육부 예산으로 연구 진행했다

최민지 기자
2021.04.25 07:00
사단법인 국학원 회원들이 2019년 개천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보신각까지 거리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개천절은 단군왕검이 우리나라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홍익인간 이념으로 건국한 날이다./사진=뉴스1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홍익인간(弘益人間·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 이념'을 삭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연구가 정부 예산으로 진행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연구를 위한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친일파 인사가 주도해 만든 문구" "자민족 중심의 개념" 등의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대신 연구진은 민주시민을 새로운 교육이념으로 제시했다. 또 이를 위해 과목을 개설하거나 수업 시간을 초등~고등학교에서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홍익인간, 친일파가 주도한 문구"… 설문 참여 전문가 절반 이상이 삭제 찬성했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는 지난달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교육과정 총론 개정방안 연구' 보고서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이 연구소 내 정책중점연구소는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한 연구만 전담하는 곳이다.

연구는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국가 교육과정 총론의 개정안을 교육부에 제시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2019년 10월부터 올 3월까지 진행됐다. 학교장과 교사, 학부모와 학생, 시도교육청 장학사, 학교 민주시민교육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 민주시민교육 관련 교수 등 총 21명을 대상으로 한 세 차례의 설문조사 결과가 주 내용이다.

연구진은 국가 교육과정 총론 개정에 앞서 교육기본법 2조에서 제시된 홍익인간의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교육목표에 비춰 홍익인간이 적절한지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교육기본법 2조는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연구진은 수정의 근거로 21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들었다. 연구진은 "전문가 의견을 조사한 결과 3차 조사에서 (교육이념이 홍익인간에서 민주주의로 수정돼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이 76.5%(13명)이었다"고 말했다.

홍익인간을 삭제해야 하는 이유로는 모호성과 역사적 배경 등을 들었다.

영국, 프랑스, 스웨덴, 싱가포르 등의 교육이념은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 중심으로 적시돼 명확한 반면, 우리나라의 '홍익인간'은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를 담아내고 있는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친일계 인사가 홍익인사라는 개념을 포함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연구진은 1차 조사에서 "친일교육계 인사들이 주도해 만든 표현이다" "자민족 중심적인 개념으로 오인될 수 있다" "집단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등의 답변이 나왔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홍익인간을 대체할 개념어로 '민주시민'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홍익인간이 교육이념이라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인간'을 기르는 것을 곧 우리의 교육목적으로 삼으면 된다"며 "교육기본법 2조의 문장 구조 상 그러한 인간은 '민주시민'으로 설정돼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수업 시간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확보해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를 위해 독립된 교과(목) 신설, 기존 교과목 강화 등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독립 교과 신설 방안으로 △일반사회 영역을 통합해 '민주주의와 시민' 교과로 개편 △현행 교과 체제 내에서 <민주주의와 시민> 과목을 개설 △독립된 <민주주의와 시민> 교과를 개설하는 방안 등을 꼽았다.

홍익인간, 개정안 발의되며 논란 촉발… 교육부 "연구진 의견일뿐"

현행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홍익인간 이념이란 용어를 삭제하는 것은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며 논란이 일었다. 종교계, 교원단체 등이 반발하자 민 의원은 법안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민 의원은 개정안 제안이유서에서 "현행법 제2조에서는 교육이념으로 홍익인간을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표현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1949년 제정된 교육법의 교육이념이 70년간 변화된 사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앞서 밝힌 연구진의 논리와 유사하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해당 연구진의 의견일뿐 교육부 정책 반영 여부는 앞으로 검토해서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교육부는 이달 20일 2022 개정교육과정 계획을 발표하며 "존중, 자율, 연대 등 시민가치 중심의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교육과정 목표 및 내용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생태전환 교육을 반영하겠다고도 했다. 이와 별개로 내년도에 관련 과목을 개설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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