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4명은 '허리세대'로 불리는 중장년(40~64세)이다. 2010년 인구 비중 36%에서 올해 40%까지 올라왔다. 초고속 고령화에 따른 변화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 중장년 인구는 362만 여명으로 전체의 37.8%다. 그런데 중장년층 평균 퇴직 연령은 49.4세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수급까지 남은 '크레바스'(소득 공백)가 15년에 달한다. 희망 은퇴 연령(73세)과의 간극은 무려 23년이다. 오래,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중장년 정책 패러다임을 '복지'에서 '일자리'로 바꾼 서울시가 방대한 데이터를 담은 '잠재적 구직·구인 맵'을 만들어 정책 해법찾기를 본격화했다. 지난 23일 열린 '중장년 정책포럼 2025'에서 중장년 구직자 1만명과 기업 429곳을 대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일자리 수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데이터 진단→정책 마련→현장 실행'의 선순환 모델로 중장년 문제를 풀겠다는 새로운 시도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랫동안 허리세대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중장년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지속가능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제"라며 "위기의 순간 판세를 바꾸는 '베테랑'(중장년)이 다시 빛날 수 있는 무대를 서울시가 만들겠다"고 했다. 정책 로드맵 설계와 실행은 서울시 중장년 정책 기관인 서울시50플러스재단(대표이사 강 명)이 맡았다.
24일 재단에 따르면, 실직자와 재직자를 포괄한 중장년 일자리 수요 조사는 국내 지자체 중 최초이자 최대 사례다. 전국 최대 규모인 3만명을 설문 조사해 향후 5년 내 '임금근로'로 (재)취업, 이직, 전직 의향이 있는 응답자 1만명의 데이터를 확보했다. 중장년 전체 노동시장 참여자의 실태가 최초로 담겼다.
서울 중장년 187만명(53.7%)은 5년 내 이직과 은퇴 후 재취업, 직업 전환 등을 적극 준비(22.3%) 하거나 계획(31.4%)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회가 되면 시도'라는 응답을 합하면 10명 중 8명(83%·289만명)이 5년 내 경제활동 변화를 희망했다. 구직 목적 1순위는 '생계유지'(82.3%), 최우선 순위는 '임금수준'(62.3%)이었다. 생계를 위해 안정적 소득을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희망 임금은 월평균 381만원이었다. 수용 가능한 임금 수준(월 331만원)과 50만원 차이다. 희망·수용 임금 사이의 '타협 가능 범위'가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연령별·성별 차이도 또렷했다. 40대는 정규직(86.84%)·전일제(61%) 선호 경향이 두드러졌다. 50대는 무기계약직(44.6%)과 기간제(29.5%) 수용 가능성이 40대보다 높았다. 60대의 경우 무기계약직(49.3%) 및 기간제(40.2%) 수용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남성은 야간근무 수용 가능성(64.8%) 높고, 관리직(39.5%)·기술직(17.7%) 선호 답변이 많았다. 반면 여성은 주30시간 미만(43%) 근로와 사무직(51.5%) 선호 경향이 뚜렷했다. 조태준 서울대 교수는 "40대는 신기술 역량 강화, 50대는 경력 전환과 재취업, 60대는 사회공헌과 시간제 일자리 선호로 세대별 차이가 확인된다"며 "세대·유형별 맞춤형 정책 설계의 필요성이 입증됐다"고 분석했다.
일자리 매칭과 중장년 취업 시장 활성화를 위한 기업(429곳) 수요 조사도 병행했다. 기업이 원하는 중장년 인재상과 일자리 조건을 파악해 '수요·공급'의 간극을 정밀 진단하기 위한 조사다. 기업들은 책임감(71.3%), 문제해결능력(41.7%), 신기술 활용 역량(40.7%) 등을 갖춘 '즉시 투입형 기술 인재'를 선호했다. 제조업(25.3%)의 채용 수요가 가장 많았고 도소매·IT·전문서비스업, 신기술 관련 직무(AI·빅데이터) 수요도 급증했다. 정책 지원은 직접적인 고용지원금(63.9%) 지급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교수는 "기업은 '책임감·소통·기술 역량'을 갖춘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를 원한다"며 "정책 인센티브와 맞춤형 매칭을 요구한다"고 분석했다.
서울시와 재단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중장년 고용창출 확대 △생애주기 경력 전환 지원 △수요-공급 매칭 고용 생태계 조성 △유연한 노동시장 조성 △생계보장형 사회참여 일자리 내실화 등 5대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정책 실행은 재단이 내년 3월 설립하는 '중장년취업사관학교'를 플랫폼 거점으로 삼아 본격화한다. 내년 마포·광진·은평·도봉·구로구 등 재단의 5개 권역 캠퍼스에서 취업사관학교를 개관하고 2028년까지 16개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취업사관학교는 '경력 진단→맞춤형 훈련→1:1 일자리 매칭'으로 이어지는 원스톱 지원체계를 구축해 연 1만 7000명의 재도약을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