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첨단산업 시대, 국가 경쟁력은 물관리혁신에서 결정된다

강부식 단국대학교 인프라건설공학과 교수
2026.06.29 09:57

최근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둘러싸고 산업용수 확보 문제가 사회적 이슈를 넘어 정치적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논쟁은 출발점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본질은 물의 절대량이 아니라 국가 수자원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호남에도 영남이나 수도권만큼 물은 충분하며, 수자원을 제대로 배치·관리하면 하루 100만 톤의 산업용수 공급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우리나라 물관리 정책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수문학적으로 보더라도 호남은 결코 물이 부족한 지역이 아니다. 전남권에는 주암댐·섬진강댐·장흥댐·수어댐 등 다목적댐이 약 11.7억㎥ 규모의 저수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영산강 상류에는 나주·장성·담양·광주댐 등 약 3.1억㎥ 규모의 농업용댐이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용담댐과 섬진강댐을 기반으로 한 새만금 수계까지 포함하면 호남권과 연계 가능한 수자원은 18억㎥를 상회한다.

문제는 물의 양이 아니라 운영체계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수자원시설은 생활용수, 농업용수, 산업용수라는 목적별로 분리 운영돼왔다. 이러한 방식은 과거에는 효율적이었지만 기후위기와 첨단산업 시대에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개별 시설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유역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통합 물관리(Integrated Water Resources Management)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설명한 것처럼 댐의 여유 공급능력을 합리적으로 활용하고, 장기간 미활용 배분용수, 농업용 저수시설, 하수 재이용수 등을 연계하면 상당한 규모의 산업용수를 확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의 수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원을 상호 연계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하루라도 용수 공급이 중단되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안정성 측면에서도 단일 수원은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앞으로는 다목적댐, 농업용댐, 광역상수도, 하수 재이용수, 농업용 저수지, 새만금 수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다중수원(Multi Water Source)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AI(인공지능) 기반 수문예측과 실시간 운영 최적화 기술을 접목하면 가뭄과 홍수, 수요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 물관리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과제는 신규 수자원 개발에서 기존 수자원의 가치 극대화로 정책의 중심축을 이동하는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에는 대규모 신규 댐 건설만으로 미래 물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기존댐 재개발을 통해 저장능력을 확대하고, 하수 재이용을 늘리며, 광역상수도 연계를 강화하고, 홍수기 유수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수원다변화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물관리의 패러다임은 '새로운 물을 찾는 시대'에서 '기존 물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이번 논의를 계기로 정부와 지자체,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농어촌공사, 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국가 첨단산업 용수 종합계획'을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이 계획은 산업용수 공급계획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가 물안보를 강화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실현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새로운 국가 물관리 전략이 되어야 한다.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반도체 공장을 얼마나 많이 건설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공장을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물관리 시스템을 갖추었는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물 경쟁력은 더 많은 물을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 기존 수자원을 얼마나 과학적으로 연결하고 지능적으로 운영하며 미래 수요에 맞게 재설계하느냐에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패는 결국 '물 부족'이 아니라 '물관리 혁신'이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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