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현장 스며든다… '생명수' 된 아리수

정세진 기자
2026.08.31 04:05

서울시, 올 폭염 취약계층·현장근로자에 40만병 공급
가뭄·산불 대비 20만병 상시비축… 작년 21만병 지원

기후 재난 식힌 병물 아리수/그래픽=김지영

폭염이 일시적인 여름의 불편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기후재난으로 굳어지면서 수돗물 아리수의 역할이 확대됐다. 수도관을 따라 가정에 공급되는 생활용수를 넘어 병에 담겨 쪽방촌과 이동노동자 쉼터의 온열질환을 막고 가뭄·산불·단수 때는 비상 급수원으로 투입된다. 올해 여름에는 폭염 취약계층 등에게 수십만 병의 병물 아리수가 긴급 지원됐다.

30일 서울아리수본부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24일 기준 올여름 폭염 취약계층과 현장 근로자 등을 위해 350㎖ 병물 아리수 39만7960병을 무상공급했다. 돈의동 등 5개 쪽방촌과 노숙인 지원시설 8곳, 구룡마을, 이동노동자 쉼터, 소방서·경찰서 등에 아리수를 전달했다.

올해 서울의 온열질환자는 이달 25일 기준 457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경기 다음으로 많았다.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도 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5년간 전국의 폭염일수와 온열질환자수 모두 4배가량 늘면서 폭염 취약계층의 사망사고도 이어졌다. 온열질환자 중 다수는 이동노동자, 노숙인,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자 등으로 야외에서 장시간 폭염에 노출되면서 열·탈진 등의 증세를 보였다.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선 갈증을 느끼지 않아도 규칙적으로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 서울시는 물을 자주 구하기 어렵거나 냉방시설 접근이 제한된 시민에게 병물 아리수를 직접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탑골공원과 영등포 이동노동자 쉼터 등 폭염 취약계층이 많이 찾는 9개 거점에는 '아리수 나눔냉장고' 18대를 설치했다. 결식 어르신·노숙인 시설에는 자판기형 6대, 서울시청·아리수본부 등 이동노동자가 많이 찾는 장소에는 냉장고형 12대를 배치했다.

냉장고에 비치된 병물 아리수는 약 5도로 보관한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는 상황에서 야외에서 일하거나 생활하는 시민이 바로 수분을 보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민 누구나 무료로 아리수를 마실 수 있는데 올해는 지난 13일부터 현재까지 약 7만5000병을 나눔냉장고를 통해 공급했다. 아리수 나눔냉장고는 다음달 30일까지 운영한다.

폭염에도 에어컨 등 냉방시설을 충분히 이용하기 어려운 구룡마을에는 2000병을 지원했다. 돈의동·창신동·남대문·영등포·서울역 쪽방상담소와 서울 전역의 노숙인 지원시설에도 병물 아리수를 보냈다. 이동노동자와 현장 근로자에게는 7만2440병, 탑골공원과 노인종합복지관에는 10만3520병을 공급했다.

병물 아리수는 공급 냉방시설이나 폭염 대피시설을 보완하는 신속하고 저렴한 대응수단으로 평가받는다. 서울시가 산정한 1병당 생산단가는 △350㎖ 크기 345.26원 △2리터 크기 582.78원이다. 2024년부터는 분리배출된 투명 페트병을 100% 재활용한 재생원료 용기를 사용했다.

폭염대응뿐 아니라 재난대응 자원으로도 쓰인다. 지난해 강원 강릉의 가뭄과 경북 의성의 산불, 경기 여주의 수해 등 재난지역에 총 20만9352병을 지원했다.

서울시는 현재 350㎖ 14만병과 2리터 6만병 총 20만병을 상시비축한다. 이 중 5만병은 단수나 수질사고 때 곧바로 투입하도록 8개 수도사업소에 분산해 보관한다. 지난해에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해 서울시내 민방위 대피시설에도 350㎖ 병물 아리수 34만5400병을 공급했다.

생산거점은 영등포아리수정수센터다. 하루평균 1만6000병을 만들 수 있고 필요하면 생산라인을 추가로 가동해 최대 3만2000병을 생산할 수 있다. 권민 서울아리수본부장은 "폭염은 이제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기후재난"이라며 "충분한 수분보충을 위해 현장 중심의 병물 아리수 지원을 빈틈없이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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