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업좀" 부처별 예산심의 돌입…'소리없는 전쟁'
#A국회의원은 지난 5월 말 세종시를 급히 찾았다. 6월 초로 예정된 부처별 예산 요구안 확정을 앞두고 관심 예산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를 차례로 찾아 실무 공무원들부터 두루두루 인사를 했다. 예전에는 직접 부처까지 찾아가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예산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내년에는 총선까지 앞두고 있어 예산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다.
# 기획재정부 예산실에 근무하는 과장 B씨는 본격적인 예산 편성 시즌에 앞서 이틀간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예산실은 '대목'인 7~8월은 아예 휴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휴가까지 다녀오고 만반의 준비를 끝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벌써부터 아는 국회의원들로부터 연락이 오고 있어서다. 다른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들이야 원칙대로 한다지만 국회의원들의 부탁은 아무래도 외면하기가 부담스럽다.
부처별 예산 요구안 집계가 마무리되면서 2016년 예산 전쟁이 본궤도에 올랐다. 빠듯한 재정 사정에 지역구 예산을 미리 반영하려는 국회의원들이 늘어나면서 '정부 예산안'에 끼어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8일 국회, 정부부처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지난 5일 각 부처로부터 2016년 예산요구서 접수를 마감했다. 기재부는 각 부처가 제출한 요구안을 토대로 이번주부터 협의 및 조정에 들어간다. 정부는 오는 9월11일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오늘부터 바로 예산안 편성을 위한 심의가 시작된다"면서 "로비 등 부작용을 우려, 부처별 예산 심의 일정 등은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 사정이 빠듯해지는데다 SOC(사회간접예산) 예산이 줄어들고 경직성 지출에 속하는 복지 등 의무지출이 늘면서 정부가 재량껏 배분할 수 있는 예산은 점점 더 줄어드는 추세다. 2014~1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정부 지출 예산 가운데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47%에서 점진적으로 높아져 2018년에는 51.8%에 이를 전망이다. 재정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정부는 지난 4월 각 부처에 내년 예산 요구에 국고 보조사업 수를 10%씩 축소하도록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보조사업 구조조정을 통해서라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지만 사업을 축소해야 하는 부처 입장에서는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앙 부처의 한 예산 담당자는 "보조사업수를 10% 줄이다 보니 사업담당자들이 왜 우리사업을 자르냐고 와서 아우성치기도 했다"면서 "사업수를 줄이다보면 아무래도 예산 규모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일찌감치 예산 전쟁에 참전하는 국회의원들이 늘어나면서 안 그래도 좁은 문을 더욱 비좁게 만들고 있다. 과거엔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 주요 당직자들이나 힘있는 정치인들 중심으로 정부 예산안에 신경을 썼지만 요즘은 초, 재선 의원들 가운데도 상시적으로 부처를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회의원들이 정부 예산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예산을 추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올해 예산안은 375조4000원에 달했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늘어난 예산은 1%도 되지 않는 3조원 정도였다. 그나마 정부안에서 감액된 3조6000억원 안에서 증액이 이뤄졌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으로 예산 협상의 무게중심은 정부로 더 기울었다는게 중론이다. 12월2일 전까지 예산안 협의가 되지 않을 경우 정부안이 그대로 본회의에 부의된다. 기재부를 설득하기가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부처안에서 짤리면 국회에서 아무리 힘을 쓰려고 해도 중간에 끼어 들어가는 경우 드물다"며 "그래서 부처예산안 편성단계부터 국회의원들의 압력과 회유가 들어오고 꼭 넣어야 할 부처 예산은 부처에서 국회의원에게 역으로 부탁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무조건 열심히만 뛴다고 예산을 따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 편성의 길목을 알아야 하고 인맥도 두터워야 한다. 뒷탈이 없도록 하는 '힘'도 있어야 한다.
국회 관계자는 "지자체가 지나치게 국회의원들을 동원하다보면 기재부에게 미운털이 박힐수 있다"면서 "해당 예산은 받아줄지도 모르지만 다른 예산을 쳐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국회의 힘이 세지고 있다"면서 "복지 비용 등으로 경직성 경비 비중이 늘어나고 세입 여건이 안좋아지다 보니 예산 편성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실 침낭 속 국회의원…예산확보 전쟁 백태
국회의원들이 '갑'이 아니라 '을'의 입장에서 세종시를 방문한다. 장차관 등 고위직을 만나는 게 아니라 5급 상당 과장 등 해당부서 실무자를 찾는다. 예산안에 지역구 사업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8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확보전쟁은 6월이면 이미 4단계 중 1단계가 끝난다고 할 정도로 일찌감치 시작한다. 연말 예산정국에 비로소 이리뛰고 저리뛰어봐야 이미 늦다는 게 국회 불문율이다.
'톱다운'은 국회의원들이 장관(톱)을 설득해 실무자에게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방식. 반대로 처음부터 실무자를 집요하게 설득해 아래에서 위로 결제가 올라가게 하는 것이 '바텀업'이다. 대개 톱다운은 단기간에 바짝 조이는 벼락치기 시험공부, 바텀업은 연중 장기간 펼쳐지는 마라톤과 비슷하다.
'쓰리쿠션'은 비교적 고난도다. 지역에 필요한 예산을 도저히 확보할 수 없을 때 쓴다. 지역구와 상관없지만 관련 공기업이나 정부부처가 희망하는 예산을 따는 데 도움을 주고, 그대신 의원이 필요한 예산에 해당 부처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드러눕기'는 고전적이다. 이윤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남 무안·신안)은 2010년 7월 정종환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장관 집무실을 무작정 찾아가 침낭에 몸을 넣고 밤을 지샜다. 지역구의 도로확장 사업이 없던 일이 됐다는 소식 때문이다.
새벽녘 장관실 청소를 위해 무심코 문을 연 여성 미화원이 인기척에 깜짝 놀랐다. 이 의원은 황급히 "놀라지 마세요. 저 국회의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정 장관을 설득, 목표를 이뤘다. 드러눕기에 톱다운 방식을 결합한 셈이다. 해당 도로는 올해 완공 예정이다.
◇쓰리쿠션 바텀-업…4단계 예산전쟁
이 같은 '전쟁'은 크게 4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연초부터 매년 6월 초까지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예산 가편성을 위해 각 부처에서 요구예산안(예산기금 총지출 요구액)을 접수하는 마감이 6월 초다. 부처별 예산 요구는 원래 6월30일까지였지만 정부안 국회 제출 시점을 당기기 위해 2014년부터 3년간 열흘씩 당기고 있다. 올해는 6월10일까지인데 기재부는 시한 보다 닷새 빠른 6월5일 접수를 마감했다.
상당수 여야 국회의원들은 1단계 기간중 자치단체·정부부처별 예산에 지역구 사업을 끼워 넣으려 안간힘을 썼다. 1단계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막판에 예산을 확보하려 '쪽지예산' '카톡(카카오톡) 예산'을 밀어넣는 것보다는 낫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정부의 예산안에 포함된 항목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추가되는 것보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며 "진짜 '선수'들은 1단계에 움직인다"고 말했다.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9월 초까지가 2단계다. 기재부는 취합한 예산요구안을 바탕으로 장기 재정전략에 비춰 가편성안을 검토하고 각 부처 의견을 수렴한다. 1단계에 포함된 예산도 2단계에서 빠지거나 조정될 수 있어 안심할 수 없다.
3단계는 9월부터 대략 11월 초중반까지다. 각 상임위가 예산안 예비심사,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본심사를 진행한다.
4단계는 예산안 심사가 정점을 찍고 국회통과가 완료되는 11월~12월 2일까지다. 이 기간 국회 예결특위 회의장 주변엔 긴장된 표정의 관계자들이 수십명씩 운집한다. 이 가운데 의원 보좌진도 상당수다. 1년 공들여 확보한 예산이 예결특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옛 계수조정소위) 심사 도중 '슥슥' 볼펜줄 몇 번으로 물거품이 될 수 있는 게 이 때다. "졸면 죽는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법정시한을 넘기기 일쑤였던 2013년(2014년도 예산안)까지만 해도 4단계는 다음해 1월1일 첫 일출을 보고서야 끝났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등 국회운영 개선 여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결과 지난해엔 시한 내 예산안을 본회의에 통과시켰다. 24시간 신경이 곤두서는 기간이 줄긴 했지만 예산전쟁의 긴장감은 여전하다.
◇비난vs박수 엇갈리는 현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여론은 상반된다. 특정 국회의원이 지역구 예산에 올인하면 비난받기 일쑤다. 이런 노력은 자칫 부당한 청탁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해당 지역의 정서는 사뭇 다르다. 예결특위 구성이 결정되면 각 지역 언론엔 "○○○ 의원 예결특위 입성, 예산확보 청신호" 류의 기사가 늘어난다. 의원들이 비난을 무릅쓰고 '전쟁'에 뛰어들어야 지역주민들에게 박수를 받는다는 얘기다.
지역구 정서가 불리하거나 초재선 의원일수록 예산전쟁도 치열하다. 새누리당으로 호남에서 선출된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곡성),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북 군산) 등도 올 상반기 세종시를 직접 방문해 예산현안을 논의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서울 양천을)은 "연말에 언론은 자기 지역 예산 타내기에 혈안이 된 국회의원 랭킹을 발표하지 않느냐"며 "랭킹 톱10에 든 국회의원들은 이날밤 이불 뒤집어쓰고 웃는다"고 털어놓았다.
사업10%줄이고, 원인 원아웃…부처별 예산심의 '악'소리
2016년 예산안 편성 방향의 키워드는 '재정개혁'이다. 지난해 확장적으로 재정을 편성한 것과 정반대 기조다. 재정여건이 좋지 않아 마냥 돈을 풀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부처별 예산요구안을 이제 받았기 때문에 아직 예산편성 기조에 대해 말하기 이르다"면서도 "예산안 지침에 따라 편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개혁을 위한 '3대전략'=정부의 내년도 예산 편성기조는 예산안 편성지침에서 엿볼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 '2016년 예산안편성지침'을 통해 재정개혁을 위한 3대전략 10대 과제를 발표했다. △재정여건의 변화에 부합하는 재원배분의 합리성 재고 △중복·누수 등 재정지출의 비효율차단 △재정정보 공개를 위한 소통채널 확대가 3대전략의 주요 골자다.
기재부는 재정사업의 타당성을 원점(zero-base)에서 재검토하겠다며 강력한 재정개혁 추진을 예고했다. 또 예산안 편성 시 각 부처는 시행중인 보조사업수의 10%를 감축하도록 했다. '원 인-원 아웃'(One in- One out) 제도도 도입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업 하나를 폐지하도록 했다.
특히 사회간접자본(SOC)·연구개발(R&D)·해외자원개발 등 대규모 지원이 이뤄진 분야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별교부세는 지방자치단체별로 국가시책사업 성과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인센티브 차원에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학생수 감소 등 환경 변화를 고려해 개혁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거품'은 줄이고 '군살'은 잘라내고…=꼭 필요로 하는 분야의 예산은 무조건 삭감하기 보다 '효율화'할 방법을 찾는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SOC 분야에는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민간투자활성화 방안을 마련했고 지난 5월에는 R&D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위해 'R&D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각 부처가 추진 중인 재정사업의 '거품'은 통폐합을 통해 몸집을 줄여나갈 방침이다. 각 부처는 이같은 방침에 따라 2000여개의 보조사업 가운데 약 200개의 사업을 통폐합해 예산안에 반영했다. 지난해부터 추진중인 재정사업 통폐합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 편성 시 유사·중복 재정사업을 600개를 통폐합 할 방침이다.
이렇다보니 부처예산안 편성과정에서부터 진통이 만만치 않았다. 홍종욱 해양수산부 기획재정담당관은 "진행중인 사업을 통폐합하겠다고 하니 진통이 만만치 않았다"며 "그래도 충분한 이해를 구했고 (그들도) 취지를 알기 때문에 대부분 수용했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세부사업기준으로 총 273개 사업 가운데 32개 사업을 줄였다.
이와 함께 정부는 예산 삭감 또는 사업 폐지를 전제로한 보조사업 평가에 착수했다. 보조사업 평가는 해마다 늘 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결과가 미흡하면 예산을 삭감하거나 폐지할 방침이다. 여느 해와 같이 보조사업의 3분의 1만 진행한 것이 아니라 전체 사업을 대상으로 평가에 착수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보조사업 10% 감축 지침은 장기적으로 재정감축에는 도움이 되지만 사실상 보조사업 수를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총량관리제 개념이 강하다"며 "실제로 예산절감을 위한 행보는 보조사업 전수 평가"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는 보조사업평가위원회에서 '폐지' 의견이 나오면 실제로 사업을 폐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인포그래픽]우리나라 예산, 어떻게 편성되나
예산안 처리를 위해 연말이면 국회가 떠들썩해 지지만 사실상 예산 편성은 1년 내내 이뤄진다. 정부의예산안 작성 및 국회 제출에서부터 국회의 예산안 처리 등 주요 절차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