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전격적인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 합의에 청와대는 공식적인 논평을 피했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에서 전략공천을 통한 '친박(親朴) 확장'을 기대했던 청와대로선 불쾌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이뤄진 '기습 합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앞으로 전략공천의 유무와 비율을 둘러싸고 김 대표와 친박계 간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한 이유다.
◇ 靑 "언급하지 않겠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30일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여야 대표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 합의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사안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논평을 삼갔다. 청와대가 정당의 공천에 개입한다는 등의 비판을 우려해 언급을 자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민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합의에 대한 보고를 받느냐는 질문에는 "자리 비운 동안의 여러 사항에 대해 보고를 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머물며 제70차 유엔총회, 유엔개발정상회의 기조연설 등의 다자 정상외교 일정을 소화한 뒤 이날 오전 6시쯤 전용기편으로 귀국했다.
앞서 김 대표와 문 대표는 추석연휴 기간인 지난 28일 부산에서 회동을 갖고 암호화된 가상의 전화번호인 '안심번호'를 활용한 여론조사를 통해 일반 국민들이 직접 총선 후보를 뽑도록 하는 국민공천제 도입을 추진키로 잠정합의했다. 양측은 또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선거관리위원회 주관으로 실시하되 일부 정당만 시행하게 될 경우 상대 당의 약한 후보를 선택하는 이른바 '역선택'을 방지하는 방안을 법으로 규정키로 했다.
이는 그동안 김 대표가 주장해온 전략공천 없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역선택' 등의 문제를 보완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김 대표 측에게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다. 내년 총선에서 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략공천을 통해 친박계의 세(勢)를 불리려 했던 청와대와 친박계로선 마뜩잖은 합의다.
◇ 김무성+유승민계 vs 친박 '전면전'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등을 논의할 이날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는 친박계가 김 대표를 상대로 조직적 반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친박계 핵심인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전화 통화에서 "안심번호 도입은 야당의 프레임에 넘어간 졸작이고, 합의 시기도 적절치 않았다"며 "안심번호에 대한 당내 이해도도 떨어지는 데 이렇게 추진한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여야 대표의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전략공천이 없는 완전 국민공천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게 청와대의 시각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완전 국민공천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여당만 전략공천을 포기할 경우 자칫 총선 승리까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 국민공천이 당내 동의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는 인식이다. 새정치연합의 혁신안은 최대 20%를 전략공천에 할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김 대표가 이미 "전략공천은 단 한석도 없을 것"이라고 공언해 둔 상태라는 점이다. 김 대표로선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건 사안이다. 결국 전략공천을 일부 허용할지, 허용한다면 어느 정도의 비율을 할애할 지를 놓고 앞으로 김 대표 측과 친박계 사이에 공천 헤게모니를 둘러싼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참모 출마설', '물갈이설' 등이 나도는 대구 지역의 이른바 '유승민계' 의원들도 김 대표 측에 서서 전선에 가담할 공산이 크다.
한편 청와대는 최악의 경우 내년 총선에서 전략공천이 사라지거나 최소한에 그치는 등의 상황에도 내부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공천방식이 어떻게 결정되든 지명도만 높다면 공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조윤선 전 정무수석, 안대희 전 대법관 등 인지도가 높은 친박 인사들을 총선에 투입할 후보군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