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내세워 오늘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진영, 정리=김태은 기자
2015.10.28 15:53

[the300][미래를 찾는 긴 여정-리버럴리스트의 매니페스토](2)리버럴리스트의 증언-자유주의의 의미

[편집자주] 머니투데이 the300은 정치인들의 삶에 녹아있는 정치관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이를 검증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나의 삶, 나의 정치'를 연재합니다. 첫 번째 필자는 국회 안전행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영 의원(새누리당)입니다.
↑사진제공=진영 의원실

나는 몇 해 전에 책 한 권을 쓴 적이 있다. 책의 제목을 ‘인간의 얼굴을 한 자유주의자’라고 하고 나 자신을 자유주의자(liberalist)라고 말했었다. 그 후로부터 이런 질문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자유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유주의의 정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자유주의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때마다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유주의를 한 두 마디로 말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어려움이었다.

맹목적일 정도로 자유주의를 내걸고 달려왔지만 내 스스로 생각이 깊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다시 자유주의를 생각해 보면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명명했던 그 때와 오늘 사이에 느껴지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누구에게 설명할 만큼 처절한 성찰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오직 새로운 다짐을 위하여 이 문제를 바라봤다. 자유주의자로 살고 싶고 그것을 이념의 푯대로 삼아 먼 뱃길을 저어가고 싶은 열망 때문에 나는 지금 국회의원이란 자리에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먼저 자유주의(liberalism)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 ‘자유’의 의미는 단순한 ‘자유(freedom)’와는 차이가 있다. ‘외부의 영향력이나 간섭에서 벗어나는 것’, 즉 ‘free from’의 뜻을 지닌 자유와는 구분해야 한다. 자유(freedom)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는 국가의 불합리한 간섭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결정권과 그것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으려 한다. 또한 단순히 자유만을 말하면 그것은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고 그 현실에는 질병이나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입장을 그대로 전제하게 된다. 결국은 ‘굶주릴 수밖에 없는 자유’의 상황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자유’는 자유주의(liberalism)의 본질인 자유, 즉 'liberty'라 볼 수 있다. 그것은 ‘정당함과 평등성 그리고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지향이념’이다. 자유의 일정한 목표를 이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모두가 다 자유로울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을 마련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자유의 실현이며 이를 통해 자유와 평등, 평화의 세상을 이룩하려는 세계관’이다. 단순한 자유(freedom)를 넘어서서 자유의 기본적 가치, 즉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것에 더 큰 위미를 부여하는 자유주의, 나는 그런 리버럴리즘(liberalism)을 사랑한다.

자유주의, 즉 리버럴리즘은 정치적으로는 공정한 선거, 시민의 기본적 인권,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교역과 사유재산의 보장 등이 기본적으로 전제된다. 이를 바탕으로 자기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의 조성과 그것에 대한 개인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영국의 계몽주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권과 천부적 인권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자유로운 존재인 개인의 합의와 계약으로 국가를 세웠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어느 정부도 개인의 자유권만은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존 로크의 리버럴리즘은 결국 전통적 왕권체제와 절대주의에 맞서 의회민주주의와 법에 의한 통치체제를 세우려고 했다. 그의 사상에 따라 일어난 정치적 격변이 바로 미국혁명, 프랑스혁명이었으며 이를 통해 억압적 지배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19세기 이후 리버럴리즘은 고전적 보수주의 즉 세습적 특권을 주장했던 정치체제와도 대결했고,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도전을 이겨내고 이제 세계적인 보편사상, 즉 핵심적인 시대사상의 바탕이 됐다. 물론 리버럴리즘은 시대에 따라 세계의 곳곳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나에게 자유주의, 리버럴리즘은 세상의 일과 일상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다. 또한 지난날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자유주의는 관념적인 논리 그 이상의 현실적인 것이며 최소한 그것을 기준으로 어제와 오늘을 연계시키고 내일을 조망하는 틀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잘못의 책임을 과거에 돌리는 경우가 많다. 마치 과거가 오늘을 만들어 놓았다고 주장할 때도 있다. 때로는 '과거의 유산을 청산한다'는 말도 하고 ‘과거로부터의 단절’도 강조한다. 하지만 리버럴리즘에서는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다. 과거는 과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오늘은 오늘에 의해서만 이뤄질 뿐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는 지난날의 과거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오늘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오늘만큼 미래에 대한 기대도 자유주의에서는 더 한층 절실하다. 과거를 넘어서 오늘을 전제하면서도 그 오늘을 통해서 미래를 구체화하려는 열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유주의, 리버럴리즘은 오늘의 이념이자 내일의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역사도 중요하다. 역사는 오늘을 비춰주는 거울이며 내일의 방향을 알려주는 지시등이다. 그 역사를 통해 스스로를 다짐할 수도 있고, 못다 이룩한 과제도 올바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그 과거의 흐름, 역사의 물줄기가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역사가 오늘을 주도적으로 이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과거의 흐름이 오늘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다. 하나의 흐름일 수는 있지만 전부일 수는 없다. 그 흐름도 때로는 흔적만 남겨 놓는 것에 불과할 때도 있다. 과거가 오늘의 굴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이야 말로 역사에서 경험된 것의 현실적인 표현이며 오늘 속에는 지난날의 역사도 다 녹아져 있다. 이 점에서 오늘의 결정적인 의미가 강조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과거에 그 책임을 돌리고 오늘의 책임을 피하곤 했다. 민족분단은 과거에 이뤄졌다. 그렇지만 분단을 그대로 지속시키는 것은 과거의 책임이자 오늘의 책임이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서 과거의 책임을 내세워 오늘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늘 남과 북에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책임이다.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둔 실천이 이루어져야만 민족사에 대한 올바른 대면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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