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노동개혁 5법 가운데 비정규직 기간을 2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안 처리 방침을 전격적으로 철회했다. 대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을 비롯한 나머지 노동개혁 4법은 조속히 통과시켜줄 것을 국회와 노동계에 촉구했다.
또 북한의 후방테러에 대비해 '테러방지법'을 반드시 제정해 줄 것을 호소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 '자체 핵무장론'과 '개헌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밝혔다.
◇"노사정대타협, 파기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이날 13일 오전 10시30분부터 99분간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갖고 "일자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차선책으로 노동계에서 반대하고 있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중에서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파견법은 받아들여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에 노동계가 상생의 노력을 해줘 노동개혁 5법 중 나머지 4개 법안은 조속히 통과되도록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간제법까지 양보했는데도 노동개혁 4법이 처리가 안 된다면 그야말로 방법이 없다"며 이 같은 결정이 사실상 '마지노선'임을 분명히 했다.
한국노총이 '9.15 노사정 대타협'을 파기할 뜻을 밝힌 데 대해 박 대통령은 "노사정대타협은 일자리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의 고통분담 실천선언이자,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그러한 국민과의 약속은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노사정대타협은 한쪽이 파기하더라도 파기될 수 없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일하고 싶어 하는 국민들을 위해,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절박하게 호소하는 경제활성화법과 노동개혁 4법을 1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 줘야 한다"며 "이번에도 통과시켜주지 않고 계속 방치한다면 국회는 '국민을 대신하는 민의의 전당이 아닌 개인의 정치를 추구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 직권상정 권한을 갖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해서는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와 여당은 정 의장에게 노동개혁 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 등 핵심법안들의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는 "예전엔 '동물국회'였는데 지금은 '식물국회'라고 한다"며 "(지금 국회는) 국회선진화법을 소화할 상황이 안 된다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자신이 언급했던 '진실한 사람'이란 표현에 대해 박 대통령은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란 뜻이지 다른 뜻이 없다"고 했다. 이어 "20대 국회는 적어도 19대 국회보다는 나아야 한다"며 "사리사욕, 당리당략을 버리고 국가와 국민을 보고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국회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北 후방테러 대비 테러방지법 제정 필요"
한편 박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는 국가를 지탱하는 두 축인데, 지금 우리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위기를 맞는 비상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핵실험 과정을 통해서 재차 확인된 북한 정권의 기만적이며 무모한 행태를 감안 할 때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은 언제라도 있을 수 있다"며 "한·미 양국은 미국의 전략 자산 추가 전개와 확장억제력을 포함한 연합 방위력 강화를 통해 북한의 도발 의지 자체를 무력화시켜 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성공단에 대한 철수 등 추가조치 여부와 관련해선 "전적으로 북한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도 북한은 남북간의 고조된 긴장상황을 악용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도발이나 사이버 테러를 언제든지 감행할 우려가 있다"며 "이슬람국가(ISIL) 같은 국제 테러단체도 이러한 혼란을 틈타 국내외에서 언제든지 우리 국민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북한의 후방테러와 국제 테러단체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테러방지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며 "부디 국회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민의 생명 보호와 국가 안전을 위해 테러방지법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호소했다.
정보당국이 최근 북한의 4차 핵실험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지 못한 데 대해 "3차 핵실험과 달리 특이한 동향을 나타내지 않아 임박한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며 "도발 징후를 놓치지 않도록 대북정보 수집능력을 강화해 이런 것을 놓치지 않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미국이 몰랐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라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일각의 '자체 핵무장' 주장와 관련, 박 대통령은 "전술핵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에 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는데, (전술핵 보유는) 그동안 주장해온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깨는 것이 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 여부에 대해선 "북한의 핵 , 미사일 위협을 감안해 가면서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은 중국이 대북제재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을 의식한듯 "그동안 북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와 긴밀히 소통해 온 만큼 중국 정부가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더욱 악화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중국이 북핵에 보다 적극적 역할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욕 먹어도, 잠 못 자도 소임 다할 것"
일본과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관련 논란과 대중외교 실패론 등을 근거로 한 '외교라인 문책론'에 대해서는 "안보 환경이 엄중한데 얘기할 상황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또 "책임있는 자리에 있을 때 (위안부 문제 해결을) 못 해 놓고 공격하는 것은 안타깝다"며 야당을 겨냥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뵐 기회 있지 않을까 한다"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직접 만날 가능성을 열어뒀다. 후속 한일 정상회담 계획에 대해선 "국제회의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도 있다"고 했다.
지방교육청의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편성 거부와 관련, 박 대통령은 "(재정 여건상) 교육청의 의지만 있다면 편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선 "지금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가 편향된 이념을 가진 집필진들에 의해 독과점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 어떤 비판을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이라며 "통일이 됐을 때 자유민주주의 신념을 어떻게 유지할 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망론'과 관련, 박 대통령은 "국제사회 지도자들로부터 (반 총장이) 성실하게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반 총장이) 왜 이렇게 지지율이 높느냐, 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개헌론에 대해선 "나라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몰아가 놓고 입에다 개헌을 달고 어떻게 해보겠다? 저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박 대통령은 "저는 대통령으로서 저의 소임을 다할 것"이라며 "욕을 먹어도, 매일 잠을 자지 못해도, 국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으면 어떤 비난과 성토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