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돋보기 심사에 착수한 가운데 이른바 '최순실예산'을 찾아 삭감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정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사업 및 예산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각 상임위에서는 '최순실표 예산'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심층심사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정부는 최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사업 및 예산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특정인을 위한 사업이 아니다"면서 선긋기에 나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31일 야당에 의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관련 사업으로 의심받는 예산 29억1700만원 중 8억2000만원을 삭감키로 했다.
복지위는 이날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의(이하 예결소위)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고 내년도 보건복지부 소관 예산 58조3000억원을 심의·의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예산 4900억원도 통과시켰다. 상임위를 통과한 복지위 소관부처 예산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될 예정이다.
복지부 소관 예산 가운데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야당에서 가장 강력히 문제제기를 한 이른바 '최순실·차은택 예산'이었다. 정부가 제출한 161억원 가량의 개도국 개발협력사업(ODA) 예산 중 17억2700만원이 책정된 아프리가 3개국(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K-프로젝트 사업과 아프리카 소녀보건 사업 예산 11억9000만원이 도마위에 오른 것. K-프로젝트는 비선실세 의혹이 있는 차은택 씨와 관련돼 특혜 혐의를 강하게 받고 있는 코리아에이드(한국형 개발협력 모델)와 관련됐다는 혐의다. 무리하게 예산이 편성됐다는 지적을 야당으로부터 받고 있는 셈이다.
소녀보건 사업도 관련 보건교육 프로그램 영상물 및 인쇄교재 제작 사업을 역시 차 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플레이그라운드 커뮤니케이션즈'가 하게 됐다는 이유로 K-프로젝트와 함께 야당에 의해 예산 전액 삭감이 요구됐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K-프로젝트의 경우 우리 정부의 개발협력 구상 일환으로 발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이 없다는 의견으로 야당과 맞섰다. 더욱이 이미 예정돼 있던 해외 원조 사업을 갑자기 중단하는 건 국제적 협력관계 및 국가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폈다. 소위 '최순실 예산'을 둘러싼 협상은 지난 28일 예산소위에서 시작돼 주말을 넘겨 이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결국 전체 예산 중 일부를 삭감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K-프로젝트는 17억2700만원 중 7억원이, 소녀보건 사업은 11억9000억원 중 1억2000만원이 삭감되는 등 총 예산 중 일부인 8억2000만원이 깎인 채 상임위를 통과했다. 한편, '최순실 예산'과 함께 복지위 예산소위에서 논란이 된 '원격의료 제도화 기반 구축 사업(25억7200만원)' 내년 예산도 10억7700만원이 삭감돼 복지위에서 겨우 처리됐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도 이른바 최순실예산으로 지목된 'K-Meal'(케이밀:개발도상국용 쌀가공식품) 관련사업의 내년 예산을 삭감키로 했다.
농해수위는 지난 27~28일 양일에 걸쳐 예산안 및 결산심사소위를 열고 정부가 제출한 25억5000만원의 아프리카 3개국(케냐·에티오피아·우간다) 농업기술지원사업 예산을 5억원으로 삭감키로 의결했다. 이로써 아프리카 3개국 농업기술지원 사업 예산을 포함한 국제농업협력(ODA) 193억원의 예산안이 172억5000만원 가량으로 줄었다. 아프리카 3개국 농업기술지원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것으로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계기로 시작된 '코리아 에이드(Korea Aid)' 프로젝트 중 하나다.
더불어민주당은 최순실씨가 개입한 예산 중 하나로 농식품부 예산인 국제농업협력(ODA) 사업을 주목해 왔다. 한국의 농업기술을 원하는 국가에 나가 현지 농업기술과 손잡고 진행하는 사업인데, 올해 '케이밀(K-Meal)' 사업이 끼어들면서 문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농식품부는 내년도 ODA 사업으로 올해 172억5300만원보다 늘어난 193억원을 내년 예산으로 편성했다.
농해수위 심사소위에서 민주당 김한정·김현권 의원은 "아프리카 3개국(케냐, 에티오피아, 우간다)의 '곡물가공식품 기술지원 사업'은 케이밀 시범사업의 후속사업 성격이 강하다"며 "케이밀 사업에 대한 철저한 평가 없이 계획한 동 사업의 신규예산 25억5000만원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당 김철민 의원도 "'아프리카 영양 강화 곡물가공식품 제조기술 지원 사업'의 부실한 사업계획을 근거로 ODA 사업 중 국제부담금 21억60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예산 171억3300만원을 감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른바 최순실예산의 전액 삭감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유 장관은 "이른바 언론에서 '최순실표'라고 하는 예산의 상당 부분은 오래전부터 (부처에서) 추진하거나 계획이 이미 있던 것들"이라며 "특정인과 연관된 사업이 아니다. 최순실표 예산의 전액삭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 결과 부당하게 편성했다면 들어내야겠지만 해당 부처에서 꼼꼼히 봐서 예산을 요구했고 저희(기재부)는 기준과 원칙에 따라서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말했다.
또 기재부가 '최순실 예산'에는 손대지 않고 복지 예산을 삭감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복지예산 증가율이 전체 총지출 증가율의 1.5배 수준"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