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지킴이 VS 기업 옥죄기' 을지로위원회를 보는 두개의 시선
"부천시와 신세계백화점이 영상단지 사업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지만, 신세계측의 갑작스런 연기요청으로 계약이 체결되지 못했다...여기엔 계속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국회의원들의 압박도 부담스럽다는 전언도 있었다...아직도 구시대의 피해의식이 기업엔 강하게 남아있다."
김만수 부천시장이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김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재선 시장이다. 노무현 정부때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대표적 친노 정치인이다. 당시 민정수석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도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김 시장이 민주당 일부 의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이유는 뭘까.
신세계가 부천시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놨다가 을지로위원회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을 접어서다. 대규모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해당 지역에선 수천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 신세계 부천상동 백화점 건립으로 5000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김 시장은 예상했다.
김 시장은 “20년 넘게 방치된 상동영상단지를 지금처럼 둘 수 없다”며 사업의지를 내비쳤다. 이 글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틀 후 남긴 것으로 파장은 적잖았다. 김 시장도 부담이 컸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그대로 둔 채 넘어가긴 힘들었다.
◇‘을‘들의 눈물 닦아준 을지로위, 기업에겐 "으르렁"= 2013년 5월 '남양유업 사태'(대리점 상대 갑질)를 계기로 만들어진 을지로위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을지로위는 출범 후 4년간 적잖은 일을 했다. 중소기업과 중소상인, 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의 경제적 약자인 ‘乙(을)’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 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직접 문제가 있는 현장을 방문해 현실에 맞는 법안도 여러개 내놨다.
남양유업과 대리점 간 상생협약을 체결했고 대형마트의 ‘30분 단위 근로계약제’를 폐지했다. 국회 청소노동자의 직접고용을 끌어낸 것도 을지로위 힘이다. 편의점 불공정계약 해결과 태광 티브로드의 간접고용 문제, 경기도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 근로조건 개선, 경비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임금 체불 해결 등 곳곳에서 을지로위의 활동은 빛났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곧바로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도 을지로위가 2013년 11월 문제제기를 했던 사안이다. 초대 위원장을 맡았던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4년간 을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안 간 곳이 없다”며 “우리 사회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을지로위원회”라고 강조했다.
을지로위가 이처럼 서민 생활과 밀접한 문제 해결에선 높은 점수를 받지만, 부천시 사례처럼 일자리 창출과 투자 등 문제를 놓고선 기업과 마찰을 일으킨다. 김 시장처럼 여당에서만 볼멘소리가 나오는 건 아니다. 야당은 날을 더 세운다. 김용태 바른정당 의원은 지난 25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옥상옥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서민을 위한 기구로 탈바꿈 기대” = 당초 을지로위는 검찰·경찰·공정거래위원회·감사원·국세청 등이 참여하는 거대 위원회가 될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일감몰아주기·부당내부거래·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거래행위 개선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 방안으로 거론되는 이익공유제 도입, 상법개정 등의 개혁입법 지원을 주도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통령 공약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눈치보기는 더 심해졌다. 을지로위가 거대해질수록 기업들은 움츠러들었다. 스타필드 하남(고용창출 효과 3만4000여 명), 잠실 롯데월드몰(상시 고용 6000여 명) 등과 같은 대규모 일자리를 수반하는 프로젝트는 앞으로 쉽게 나올 수 없을 것이란 게 재계의 목소리다. 쇼핑몰 근무자 대부분이 서민들인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을지로위가 이들의 일자리를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을지로위가 경제민주화 어젠다 전반을 주도하는 실세 기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며 "여기에 조사권 부여까지 논의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옥상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당내·외는 물론 기업들을 중심으로 부정적 기류가 감지되자 민주당은 을지로위를 '슬림'한 조직으로 바꾸기로 했다. 대기업 갑질 등은 공정위·검찰 등 기존 기관에 맡기고, 을지로위는 소상공인·영세자영업자를 돌보는 기구로 개편하는 게 골자다. 소상공인 등의 의견을 청취하고 대변하는 기구가 없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기존 계획대로 을지로위를 구성, 격상시킬 경우 다른 부처와의 업무 충돌 및 갈등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며 "당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이같은 문제의식에 공감해 당초 계획보다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안을 개편했다"고 했다.
'경제민주화' 부터 '乙 안전망'까지…을지로위원회 10대 중점 추진법안은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은 현장 방문과 농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입법기관인 국회의 지위를 적극 활용,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법안을 여럿 발의했다. 이 중에서도 을지로위가 꼽은 '10대 중점 추진법안'들을 살펴봤다. 대부분이 논쟁적인 사안이라 1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文 대통령 공약 + 경제민주화 과제들 = 을지로위가 추진하는 과제들은 대부분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이 가운데 경제민주화 과제이자, '뜨거운 감자'로 꼽히는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가 대표적이다. 을지로위 소속의 최운열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 5개 법안을 발의했다.
전속고발권은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찰고발 권한을 공정위만 갖도록 하는 제도다. 공정위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불공정거래 피해자들이 고발권을 행사할 수 없어 폐지가 요구돼 왔다. 박근혜정부에서는 고발권한이 조달청과 감사원 등으로 일부 확대됐다. 이에 문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과제 중 하나로 대선 과정에서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속고발권이 완전폐지되면 고소고발이 난무할 가능성이 높고 기관마다 다른 결정으로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점 등 때문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잖다. 법안 역시 지난해 11월 상임위에 상정된 뒤 진전이 없는 상태다.
문 대통령이 공약했던 '생활임금제' 관련 법안도 을지로위의 중점 과제다. 김경협 의원은 지난해 6월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 등 생활임금제와 관련된 법안 3건을 발의했다. 생활임금은 생활임금은 주거·교육·문화비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제공하는 임금을 말한다. 문 대통령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가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일부 자치단체에서 시행중인 생활임금제를 전국 확대한다고 공약한 바 있다.
지난해 7월 송옥주 의원이 발의한 '적정임금제법'(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건설근로자가 받아야 하는 적당한 임금을 산정해 고시하도록 한다. 국가나 지자체가 건설업에 한해 해당 직종에 지급돼야 할 임금액을 결정하고 이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하도급 과정에서 임금이 깎이는 일을 근본적으로 차단한다는 취지다.
◇벤처기업, 상가세입자, 가맹점주…'을'(乙) 안전망 만든다 =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은 대표적인 '을'을 위한 안전망 가운데 하나다. 임대차기간중에 언제든 권리금 회수가 가능하도록 했다. 상가 임차인의 권리금 보호를 명문화 한 셈이다.
을지로위가 출범할 무렵부터 주력했던 편의점 불공정계약 방지도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이학영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의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이다. 가맹점사업자가 가맹본부에 거래조건의 협의를 요청할 경우 가맹본부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그 협의요청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대기업의 중소·벤처기업 기술편취 행위를 방지하는 법안도 마련했다. 유동수 의원이 발의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다. 법에서는 특허청장 등이 조사하거나 시정권고 할 수 있는 부정경쟁행위의 범위를 종전 7가지에서 10가지로 확대했다. 특히 대기업의 기술탈취 유형 가운데 대부분이었던 '모방 상품 양도·대여', '성과 무단 사용' 행위가 부정경쟁행위에 포함되면서 중소·벤처기업의 독자 기술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을지로위 중점 추진 10대 법안 가운데 유일하게 지난해 12월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