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작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A씨는 지난 여름 내린 폭우로 곤경을 겪었다. 6개월 안에 완공키로 한 주택이 폭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공사기한은 불가피하게 늦춰졌으나 폭우피해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할 길이 요원했다. 기상청이 만든 강수량 자료도 A씨 공사지역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상감정사를 찾았으나 관련 업체는 한 곳뿐이었다.
'블루오션'(유망한 시장)이라며 도입된 기상감정사 면허 취득자가 6년간 11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불규칙한 날씨현상을 전문적으로 분석할 인력 육성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상청 등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2~2018년 기상감정사 면허 취득자는 11명에 불과했다. 국내 기상사업체 455개 중 기상감정업을 맡은 업체는 단 한 곳 뿐이었다.
기상감정은 기상산업진흥법에서 정한 업무다. 해당 법은 기상감정을 '기상현상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특정 지점의 기상현상을 추정하거나, 그 기상현상이 특정 사건에 미친 영향 등을 판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기상감정사는 폭우로 발생한 건물·차량 침수피해, 강풍으로 인한 각종 시설물 피해 등의 원인 분석자료를 주로 만든다. 범죄 조사 때 범행 당시 기온, 강수량 등을 분석해 진술의 신빙성을 판정할 감정결과를 내기도 한다.
기상감정사 면허는 기상청이 부여한다. 기상감정기사 자격을 딴 후 기상 관련 분야에서 2년 이상 경력을 쌓거나, 면허를 얻기 위한 교육과정을 140시간 이수하면 취득할 수 있다.
폭염, 혹한, 폭우 등 이상기후 현상이 늘어나면서 기상감정사의 중요도가 높아졌지만 직업 성장세는 제자리걸음이다. 신 의원에 따르면 기상청이 국민들에게 기상관측자료로 발급하는 기상현상증명 건수는 2017년 한 해 동안 2만5935건이었다. 분석할 기상자료는 쏟아지는데 이를 들여다 볼 사람은 손에 꼽는다는 것이다.
일부 분야로 편중된 기상사업체 운영 현황도 문제다. 신 의원은 국내 등록된(업종 중복등록 가능) 기상사업체 455개 중 감정업을 등록한 업체는 1곳이라고 밝혔다. 전체 업체 중 97%를 차지한 442개 업체는 장비업체였다. 예보업체는 25개, 컨설팅업체는 36개였다.
기상감정사 '빈곤' 현상은 기상청의 방치 때문이라는 것이 신 의원의 주장이다. 2012년 블루오션이라며 해당 면허를 도입했지만 관련 고시도 시행 5년 만인 2017년에 뒤늦게 제정했다. 기상감정 표준매뉴얼 역시 같은 해 개발됐다. 신 의원은 "기상청은 면허 도입 후 3년 동안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승배 한국기상산업협회 기상본부장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보석에도 진위 여부를 가리는 감정사가 있듯 기상감정사도 날씨로 인한 손해배상, 다툼 등의 상황을 가릴 수 있다"며 "범죄 수사에 사용되는 포렌식 기법이 날씨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행 제도는 날씨를 증명할 때 기상증명서만 붙이게 하는데 피해보상 관련 날씨 민원들은 사안에 따라 기상감정사의 감정서를 첨부토록 하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기상감정사로 활동중인 이천우 웨더피아 대표도 기상감정사들이 면허 취득 이후 활동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국가를 대신해 감정업을 하라고 면허를 내줄 때는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니 국가에선 규제 철폐 기조에 맞지 않다고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기상청은 수요가 많지 않아 해당 산업 육성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험회사 자체의 규정이 존재하고 규제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란 것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개인들이 비용이 들어가는 감정사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아 수요가 부족한 측면이 있고, 기상감정사 이용을 강제하는 것은 규제로 비춰질 수 있다"며 "기상청에서도 대국민 홍보를 통한 인지도 향상, 감정기법 표준화와 교육·연구 활성화 등 중장기적인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기상예측으로 날씨보험 상품도 개발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해 기상감정의 활성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상청은 매년 기상산업진흥 시행계획을 세울 때 기형적인 기상산업 구조의 평준화, 또 관련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