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막을 내리고 레이와(令和) 시대의 막이 올랐다.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하고 장남인 나루히토 왕세자가 1일 오전 새 일왕으로 즉위했다. 일본의 새로운 변화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전후 세대(1960년생)인 나루히토 일왕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부채 의식이 상대적으로 적다. 헤이세이 시대에서 이루지 못한 과거사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의지가 강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새 일왕의 즉위가 한일관계 개선의 촉매가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는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를 축하하고 앞으로도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아키히토 천황에게 서한을 보냈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아키히토 천황이 재위 기간 평화의 소중함을 지켜나가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해왔다고 하면서 한일관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한데 대해 사의를 표했다. 퇴위 후에도 양국관계 발전에 힘써줄 것을 기대했다”고 밝혔다.
이날 즉위한 나루히토 신임 일왕이 아베 신조 총리의 우경화 움직임을 어느 정도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나루히토 일왕은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연호 교체와 새 일왕 즉위에 맞춰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노골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신헌법 제정 의원연맹’ 주최 모임에 보낸 메시지에서 “레이와라는 새 시대가 시작된다. 국가 미래상에 대해 정면에서 토론해야 할 때가 왔다”고 했다. “모든 자위대원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헌법에 확실히 자위대를 명기해 위헌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정치가의 책임 아니겠느냐”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우경화 움직임이 본격화할수록 한일관계 개선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과거사 문제, 초계기-레이더 갈등,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독도문제 등 여러 현안이 얽혀 최악의 상황이다. 불편한 한일 관계가 북미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한미일 삼각 동맹과 공조 균열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문제는 이런 갈등 국면이 레이와 시대에도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도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일본의 우경화가 한일관계 개선에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장은 “한일관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연호가 바뀐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긴 어렵다고 본다. 서로가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에 먼저 나서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남 소장은 “퇴임하는 천황도 아베 총리와 역사 인식이 달랐고 새 천황도 아버지의 역사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헌법상 천황은 정치 개입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나루히토 천황이 한일관계 개선에 일정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는 있지만 적극적 행보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일 정상이 직접 만나 미래지향적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긴요하다고도 조언했다. 남 소장은 “한일 정상회담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일이 갈등할 때보다 협력할 때 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며 ”새로 시대가 바뀌는 계기를 통해 한일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는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지가 핵심 관건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23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외교) 국장급 협의에서 G20를 포함한 다양한 계기에 양국 간 교류 활성화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