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여가부…비정규직·젠더갈등 앞 2030에 통하려면

박소연 기자, 구영완 인턴기자
2021.08.29 13:25

[the300[대한민국4.0 Ⅳ: 어젠다 K-2022]<6>-①세대, 젠더갈등 대응 방안 좌담회

[편집자주] 2022년 3월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머니투데이가 공공정책전략연구소(KIPPS)와 함께 9회에 걸쳐 '대한민국 공론장'을 마련합니다. 어느 정파에도 얽매이지 않고 모든 후보와 정당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 어젠다를 발굴하는 좌담회를 진행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기승을 부릴 맹목적 진영논리나 인기 영합의 흐름에 제동을 걸고, 여야·좌우를 넘어 미래를 위한 생산적이고 책임 있는 정책 대안 경쟁을 유도할 계획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여성가족부 존치 여부'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전문가들은 여가부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시대 변화를 반영한 변화를 주문했다. 혼인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불안정한 고용상황에 노출된 2030 세대에 맞는 정책 변화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머니투데이는 킵스(KIPPS·공공정책전략연구소)와 공동으로 지난 24일 서울 광화문 본사 회의실에서 '세대, 젠더갈등 대응 방안'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서는 여가부가 출범 20년 만에 존재의 이유를 정면으로 도전받는 상황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여가부 출범 20년…존재의 의미 도전받는 이유는
24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에서 열린 'KIPPS 머니투데이 기획 토론'. 왼쪽부터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장, 이진 KIPPS 공동대표, 김은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연구위원.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김은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연구위원은 "젠더 이슈는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에서 관심을 갖는 갈등처럼 다뤄지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오래된 이야기들로, 문제가 해소되지 않아 적극 드러나고 있을 뿐"이라며 "부처(여가부)의 존폐 논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은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 출범 등 '여성정책'이 첫발을 떼며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와 고용 평등을 포함해 배제됐던 여성 이슈들이 정책적으로 확장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2001년 실행력을 갖춘 부처급 정책 추진체계로 여성부가 발족하면서 정책화가 본격화됐다.

김 연구위원은 "여가부 출범 20년이 지난 현재는 많은 것들의 기점인 시기"라며 "20년간 해결하지 못한 돌봄 문제는 코로나 국면에서 심각성이 더욱 부각됐고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하는 한국의 저출산 고령 문제도 젠더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2005년을 전후로 저출산 담론과 맞물려 가족정책과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이 확장됐지만 현실과 괴리는 심화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남성가장 '1인 생계부양자 모델'은 와해됐다"며 "그러나 법의 구조적인 틀에서 돌봄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고착되면서 남성에게 돌봄은 '도와주는 것'에 머물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 관련 정책을 여가부에 집약하면서 다른 부서가 주도하는 노동·고용평등 관련 정책추진이 취약해진 측면이 있다"며 "또 각종 정책에서 여성의 몸을 여전히 출산의 도구로 보는 인식이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 속에 성별임금격차는 2019년 기준 32.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고 평균치(12.8)의 2배가 넘는다.

비혼·비정규직 많은데…2030세대에 공감 안되는 젠더정책
24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에서 열린 'KIPPS 머니투데이 기획 토론'에서 김은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연구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제도권의 젠더 정책은 2030 세대에게 괴리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비정규직에 시달리는 청년 세대는 현행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의 수혜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김 연구위원은 "대선 예비후보들이 저출산과 관련해 출산·육아휴직, 돌봄 강화를 말하는데 이것도 기성세대의 관점"이라며 "지금 청년세대는 선택혼·선택 출산, 비혼·비출산을 얘기하며 돌봄과 육아는 인생 계획에 없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안전한 삶을 위한 디지털 젠더 폭력 대응을 구체화하고 돌봄의 남녀 공동 분담을 기본원칙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가부 차관을 지낸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장은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가족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협회장은 난자 냉동 비용 등 연령·생애주기별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건강가정기본법상 가족은 남녀가 결혼한 가정에 한정하고 있다. 사유리(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자발적 비혼모) 같은 경우 정부 지원에서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저출산 예산의 80~90%가 보육시설에 투입되는 점도 지적했다. 이 협회장은 "코로나 이후 여성에게 가정돌봄 기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가정방문 돌보미 등 보육선택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위 '페미'라는 게 워킹맘 입장에서 멀리 있지 않다"며 "아이가 아프거나 일이 늦게 끝나면 아이를 돌봐줄 데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녀 모두 대학 나오고 취업하지만 결혼을 선택하면 여전히 여성이 주로 육아를 맡는다. 결국 민간기업 임원 중 여성은 3%인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제도와 현실의 괴리·경제악화…2030세대 젠더갈등으로

제도와 현실의 괴리는 '이대남'(20대 남성), '이대녀'(20대 여성) 간에 젠더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는 요인이기도 하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은 제도적으로 보면 차별 없는 성평등 국가이지만 여성들의 삶이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라며 "20대 대학 진학율, 정치활동 참가율 등 지표는 좋지만 노동시장 등 실제 삶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최근 페미니즘을 향한 '이대남'들의 '백래시'(집단적 반발)가 취업난과 부동산 폭등 등 급격한 경제악화와 관계가 높다고 분석했다.

이 협회장은 "이대남 분노의 한편에는 기성세대에 비해 어려워진 취업에 대한 불만이 있다"며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절 잘나가던 알파걸이 취업해 직장에 가면 남성과 달리 CEO(최고경영자)가 될 야망을 꿈꾸지 못하고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레이건 시절 미국에서도 경제위기 비판의 화살을 여성에게 돌렸다. 미국 남성의 임금이 10년 전에 비해 줄어든 것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해서라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자신들의 무능을 약자와 약자의 대결로 붙이는 측면이 있는데 한국의 청년들은 공통적으로 불평등에 처해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여가부가 존치돼야 할 이유? "여성 대표성 여전히 낮아"
24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에서 열린 'KIPPS 머니투데이 기획 토론'에서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박근혜정부 시절 여가부 차관을 지낸 이 협회장은 여가부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정책이 전통적 가족 지원에 머무는 등 현실 변화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공무원들의 역량도 지적했다.

이 협회장은 "여가부 장관을 10명 모셨는데 젠더감수성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소신과 열정으로 타 부처와 커뮤니케이션하며 넛지(부드럽게 개입해 선택을 유도하는 것)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일부는 지역구 (국회의원) 가기 전 잠깐 거치는 식으로 장관 자리를 이용한다"고 꼬집었다.

또 "부처 이기주의가 심해 적합성을 떠나 부처 간에는 서로 소관업무를 가져가려고 경쟁하지만, 정작 부처내 과별로는 일을 서로 안 맡으려 싸우는 현실도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여가부 폐지는 반대했다. 이 협회장은 "위원회(로 바꾸자는 안에)는 반대한다. 여가부를 만든 건 국무회의 의결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법이 제정되고 예산이 확보돼 정책이 실행되는 데 오래 걸린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여성의 대표성이 여전히 낮은 현실에서 여가부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협회장은 "성희롱 방지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는데 고용부를 촉진하고 인권위에 끌고 가 실행한 것"이라며 "젠더감수성을 지닌 부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