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8시. 베이징시 차오양구 디산스관 주중한국대사관 1층 다목적홀에 주중 교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재외국민 투표 시작일이다.
아직은 쌀쌀한 아침이었지만 교민들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5년반째 베이징 왕징에 거주 중이라는 대기업 종사자 이모씨(53)는 장쑤성 출장에 앞서 서둘러 투표장을 찾았다.
이씨는 "나라가 잘돼야 한다는 생각에 반드시 투표를 해야겠다고 판단했다"며 "한중관계에 대해 냉정하게 접근하고 행동하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이 말속에는 혐한·혐중 정서가 지배하는 양국 관계에 대한 걱정이 깔려 있다. 상대국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기업이나, 교민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를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하려는 듯했다.
이번 대선은 중국 교민들에게 남다르다. 한중관계가 생업과 직결되는데 요즘 두 나라 국민간 정서가 최악이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때까지는 정치적 논리가 큰 줄기였지만 오늘날 한·중간 악감정의 핵심은 서로를 향한 혐오다. 정치처럼 협상이나 타결로 풀어질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 참여율이 다른 나라 교민들과 다르다. 중국 전체 부재자신고인 명부 인원은 2만9581명. 전체 교민 25만6875명 중 투표가 가능한 선거권자(20만5500명)의 14.6%다. 일본(8.5%)이나 미국(6.2%)을 크게 앞선다.
왕징 한 아파트 단지에서 미술학원을 운영 중인 이모씨(53)도 한중관계가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이번 투표에 참여했다. 이씨는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면서 교민들의 위상도 높아졌다"며 "그렇지만 한중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데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중국 교민들의 투표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는 하지만 과거 대선 때와 비교하면 매우 저조한 편이다. 2017년 대선 때 투표를 신청한 인원은 4만3912명이었다. 전체 교민 수가 28만명이 넘어 지금보다 분모가 컸다고는 하지만 비율상 투표 포기 유권자가 훨씬 높다. '역대급 비호감'들의 대결 프레임이 한 몫 했다.
안정수 재중한국대사관 재외선거관리위원장은 "투표에 앞서 교민들을 대상으로 투표 독려 활동을 벌였는데 과거에 비해 투표에 의지를 보이는 유권자들이 적다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며 "아쉬움이 남는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에서 국제관계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 조모씨(30)도 얼마전까지도 지지후보를 선택하지 못했다고 했다. 외교 관점에서 한국의 위상을 살릴 수 있는 이가 누구일지가 투표의 기준이 됐다고 했다. 조씨는 "한국과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졌다고 본다"며 "큰 틀을 바꿀 수 없는 운명적 상황에서 지금의 불협화음을 해소하고 강한 외교력을 보일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