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행보를 보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업들이 반발하는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 등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일각에선 오락가락 행보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 대표가 전통 지지층과 중도층의 지지를 함께 끌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민주당이 지난해 11월 당론으로 정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상장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해당사자인 기업들이 우려하는 내용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할 경우 경영진이 중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한 투자보다 단기 이익 실현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커 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단 점이다. 다른 하나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단 점이다. 이사의 의무가 강화되면 배임죄 적용 여지가 커질 수 있고 기업 실적과 무관한 요인에 따른 주가 하락의 책임을 이사 개인이 지게 될 수 있어 과감한 선제적 투자 등을 기대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강행 움직임에 경제 8단체는 이날 국회를 찾아 민주당에 상법 개정 논의를 재고해 줄 것을 촉구했다. 김창범 한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이사 충실 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면 이사들은 정상적인 경영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경제 8단체는 상법 개정안 대신 소수 주주 보호를 위한 핀셋 방식의 자본시장법 개정을 논의해 달라고 요청하는 합동 입장문을 민주당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상법 개정 강행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이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상법 개정안 통과는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선진자본시장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며 "공정하고 투명한 자본시장이 활성화될 때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우리 기업과 경제가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상법 개정은) 경제의 목줄을 죄는 게 아니라 주주 권리와 기업 투명성을 높여 우리 경제를 한 단계 진화시키는 법안"이라고 했다.
또 이 대표는 최근 노총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동시에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는 게 골자다. 앞서 두 차례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모두 폐기됐다.
이 대표의 이런 모습은 최근까지 보인 기업친화적 행보와 엇갈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대표는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업이 앞장서고 국가가 뒷받침해 다시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 연설에서도, 지난 20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기업 중심의 성장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현대차 공장에서 "기업의 성장은 나라 경제 성장의 전부"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법안들이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타이밍에 강행할 것이라곤 생각을 못 했다"며 "재계에서는 이 대표가 최근 기업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온 까닭에 이들 법안에 대한 논의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가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승부처가 될 수 있는 중도층 표심을 끌어안는 과정에서 기존에 추진하던 정책들과 충돌을 빚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대표 입장에선 상법 개정이 개인 투자자 등 중도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법안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상법 개정 논의는 주요 대기업 계열사의 분할·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소액주주의 권익 침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촉발됐다.
한 제3지대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에 이 대표가 견제할만한 주자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 대표와 민주당이 중도층 공략에 속도를 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포용할 수 있는지가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