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 27일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확정된 헌법개정을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이에 공포한다."(1987년 10월29일 국무회의 제9차 헌법 개정 공포문)
우리 국민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동력으로 한 제9차 개헌을 통해 군부독재를 종식하며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이른바 '87체제'라는 헌정 질서의 탄생이다.
87체제는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데 기여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장기 집권을 막으려 도입했지만 현실에서는 임기말 강력한 리더십 부재와 그에 따른 국정 동력 상실을 걱정해야 하는 문제를 낳았다. 특히 여야 간 극단적 대립을 야기하는 승자독식 정치체제는 정책 연속성을 저해하고 정쟁을 일상화하며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약화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소추 사태는 이러한 '87체제'의 한계를 극명히 드러낸 장면이다.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가 초래한 권력의 독단과 여소야대 상황에서의 국정 마비는 헌정 체제 전환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권력구조 개편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선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정도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4년 중임 대통령제나 대통령과 국무총리 간 권한 분담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는 '분권형 정부' 모델 도입, 승자독식구조 완화를 위한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등은 이미 과거 개헌 논의 과정에서 수없이 거론된 바 있다.
# '개헌의 열쇠'를 틀어쥔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본인의 개헌 의지만 확고하다면 87체제 이후 등장한 정치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개헌이란 꿈을 실현할 수 있다.
작금의 개헌 논의는 여당인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에서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야권 원로와 원외인사들도 목소리를 더한다. 흥미로운 점은 개헌을 요구 하는 인물 대부분이 이 대표에 맞서는 정치 세력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제도 개혁 요구가 아니라 이 대표 개인에 대한 정치적 공격으로 읽힐 수 있는 지점이다.
그래서일까. 과거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공약하며 필요하다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하겠다던 이 대표는 최근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이 대표는 "지금은 내란 극복과 헌정 질서 복구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이 대표의 신중함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신중함이 지나쳐 국민이 염원하는 개헌을 이룰 역사적 기회를 놓쳐선 안 될 것이다. 개헌은 단순히 개인이나 당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문제다.
개헌 요구가 설령 적대적인 정치 환경 속에서 시작됐더라도 이를 국민 통합과 민주주의 심화를 위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87체제의 종언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에 둔 윤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파면되든 직무에 복귀하든, 이 대표도 대한민국이 직면한 헌정 체제 전환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외면할 순 없을 것이다. 이 대표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새로운 장을 여는 결단을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