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안보 분야 팩트시트(설명자료) 발표가 예정보다 늦어지는 배경은 원자력추진잠수함(SSN·원잠)에 들어가는 핵연료인 '우라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라늄-235는 원전을 돌리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지만 농축 정도에 따라 핵무기까지 전용 가능한 물질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원잠 승인에 합의했더라도 미국 행정부는 핵 비확산 기조를 유지해 오고 있어 막바지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팩트시트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질의에 "미 국무부로부터 받은 내용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것"이라며 "거의 합의 단계에 이른 문안을 서로 주고 받았고 미국 측에서도 여러 부처 간 최종 확인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앞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전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팩트시트는) 사실 어제 오전에 끝날 것으로 알고 저희들도 준비했다"면서 "여러가지 원자력 잠수함과 또 여러가지 협정 이런 문제들이 미국 내 여러 정부 부처에서 조율이 필요해서 시간이 좀 지체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도 미국으로 돌아가면 국무부, 상무부 또 에너지부까지 많은 설득을 하겠다고 했다"고도 했다.
우리나라는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평화적 목적에 한해 미국과의 서면 합의가 이뤄질 경우 '우라늄-235'를 20% 미만까지 농축할 수 있다. 우라늄-235를 80% 이상까지 농축할 경우 에너지 밀도가 높아져 핵무기로 쓸 수 있어 핵 비확산을 원하는 미국은 우리나라와 협정을 체결해 제한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통상 5% 미만으로 농축된 우라늄을 러시아 등에서 수입해 상용 원전에만 사용한다.
우라늄은 자연 상태에서 우라늄-238이 99.3%, 우라늄-235가 0.7%로 섞여 있다. 우라늄-238은 핵분열이 잘 일어나지 않지만 우라늄-235는 느린 속도의 중성자와 만나면 핵분열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다량의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이를 기반으로 대형 원자로나 원잠에 들어가는 소형 원자로를 돌릴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정상회담에서 원잠 도입에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미국 행정부 내에선 핵 확산에 대해 우려가 크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4월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 우리 정부는 기술 보안 문제라고 밝혔지만 단순 보안 문제로 동맹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건 핵확산과 관련된 우려가 있었다는 관측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종료 시한을 점검하며 핵연료를 자체 확보할 방안을 검토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조 장관에게 "한미 원자력협정 종료 예정기한이 언제냐"면서 "그 효력 기간이 지나서 협정이 없어지면 형식적으로 제한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해당 발언은 2035년 전후 한국이 원잠을 실전 투입할 때쯤 한미 원자력협정을 종료해 핵연료를 자체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2035년 6월까지 유효한 한미 원자력협정에는 '어느 한쪽 당사자는 다른 쪽 당사자에게 적어도 1년 전에 서면통보함으로써 언제든지 이 협정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협정을 종료할 경우 별도의 원자력 협정을 맺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잠수함 자체가 아닌 핵연료 승인을 요청한 것도 미국 행정부 내 반대가 강해 톱다운(top-down·하향식)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던 것으로 안다"며 "정부 입장에선 우리 원잠을 미국 조선소에서 짓느냐, 한국 조선소에서 짓느냐는 크게 중요한게 아니고 핵연료 관련 제한을 푸는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핵연료 문제만 풀면 우리 원잠을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건조할 수 있는 것"이라며 "미국 행정부 내 설득이 생각보다 더 걸릴 수 있고, 원잠 관련 내용이 이번에 들어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