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유민주당이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강한 일본' 현실화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일본의 '우경화' 우려가 크지만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를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9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전날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전체 465석 중 316석(소선거구·비례대표 합산)의 역대 최다 의석을 확보했다. 일본에서 단일 정당이 중의원에서 단독으로 개헌 발의선(전체의 3분의 2, 310석)을 넘긴 것은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처음이다.
이번 압승으로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다진 다카이치 총리는 외교·안보 등 대외 정책에서도 거침없는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관심은 다카이치 총리가 공약으로 내건 '헌법 개정' 추진 여부다. 일본은 전쟁과 무력 행사의 영구 포기, 육해공군 전력 보유와 교전권 부인 등이 담긴 헌법 9조(평화헌법)에 따라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다.
자민당은 그러나 실질적 군대인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일 유세에서 "헌법에 왜 자위대를 적으면 안 되는가"라며 "그들의 긍지를 지키고 (자위대를) 확실한 실력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개헌안은 중의원뿐 아니라 참의원(상원)에서도 3분의 2 이상 의원이 찬성해야 발의할 수 있다. 현재 참의원은 여소야대 상태다. 다음 참의원 선거가 열리는 2028년 여름까지는 개헌보다는 '안보 강화' 등의 정책이 중의원 주도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중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방위비를 늘리고 강성한 안보 정책을 취하고 헌법 개정까지도 갈 수 있다"며 "국가정보국 설치 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일본의 강경 안보 노선이 본격화할 경우 중일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의원 선거 결과를 보고 이날 '트루스 소셜'에 "다카이치 총리가 보수적 가치와 '힘을 통한 평화'라는 의제를 추진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두길 바란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공개적으로 미일 안보 연대 강화를 시사함에 따라 동북아시아 정세의 변동성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안보 강화 전략이 당장 한국에 직접적인 부담이 되진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로부터 인도·태평양에서의 안보 역할 분담을 요구받고 있는 한국은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과 안보 측면에서 연대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교수는 "한일 간의 군사력 균형이 이뤄지고 있는 요즘 일본의 군비 증강이 우리에게 전략적으로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이 필요한 시대인만큼 한일 간 협력할 분야가 더 많다"고 말했다.
다만 과거사와 영토 문제 등으로 갈등이 불거질 경우 한일 간 신뢰 관계가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국내 여론을 의식해 오는 22일로 예정된 일본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에 핵심 관료를 보내거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등 주변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장은 "한국과 일본이 '셔틀 외교'를 정착시키는 등 당장은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독도 등 구조적인 갈등 요인을 잘 관리해야 '윈윈'할 수 있다"며 "오는 22일 '다케시마의 날'에서 일본 정부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가 향후 한일 관계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카이치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 간에 형성된 개인적 친분과 중일 갈등 지속 국면 등을 근거로 다카이치 총리가 가급적 한국과 갈등을 유발하는 발언이나 행보를 자제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교수는 "외교에선 정상 간의 관계가 중요한 데 이 대통령이 매우 전략적인 판단을 잘 하고 있다"며 "(현재로선) 다카이치 총리가 한국과의 관계를 잘 관리하는 등 두 정상 모두 전략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