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지나치게 보장돼 있고, 민주주의가 발달돼 있어 언론들이 너무 많이 과장되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1995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만난 막심 칼롯 코르만 바누아투 총리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한 위로를 전하자 김 대통령이 화답하며 꺼낸 말이다.
외교부는 30년이 지나 비밀이 해제된 1995년 외교문서를 31일 공개했다. 1995년 6월29일 코르만 바누아투 총리의 공식 방한 일정 중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한 김 대통령의 솔직한 심정이 외교문서에 담겼다.
1995년 6월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등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대형 참사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대형 사고가 발생하자 김 대통령은 "참담하고 송구스럽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김 대통령은 코르만 총리에게 "세계에서 경제가 발전된 중요한 나라치고 사건이 없는 나라가 없고, 경제가 발전되다 보면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에서도 사건이 많이 나고 있고 일본도 심각할 정도로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바, 물론 사건이 없는 것이 제일 좋지만 공업화로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이며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미국에선 7분에 살인사건이 1건씩 발생하고 있는데 미국 언론이 전부 다 보도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일본에서도 몇 달 전에 '오움 진리교' 사건과 관련해 경찰청 장관이 저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아직 범인이 체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몇 달에 한 번씩 큰 사건이 발생하지만 우리 언론들은 일단 발생했다 하면 엄청나게 과장 보도하고 있다"고 했다.
타국 정상과 만나 자국 언론을 비판하는 발언을 내놓은 건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과 일본 등의 사건·사고와 언론 보도를 비교하면서 한국 상황을 언급한 것도 특이한 지점이다.
김 전 대통령의 불편한 심경은 이후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부 장관과의 면담에서도 확인된다. 삼풍 사고 약 3주 뒤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차 미국을 방문한 김 대통령은 연설 전날인 1995년 7월 25일 크리스토퍼 전 장관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삼풍백화점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며 "2차 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진주만 전쟁을 잊지 말자'는 슬로건을 통해 미국민을 단결하는 계기를 만들었듯 우리 국민도 삼풍백화점의 참사를 잊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유교적 풍속 때문인지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모두 대통령 책임인 것으로 돌리는 잘못된 관습이 있는데, 최근 이러한 경향이 변하는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국민 알권리 보장과 외교 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생산한 지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이날 외교부는 1995년에 생성된 문서 2621권, 37만쪽을 일반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종전 50주년 기념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담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방한 △김영삼 대통령 미국 방문 △아세안 등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참여 △유엔 50주년 기념 특별정상회의 등의 내용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