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화두로 던진 '국민배당금제' 검토 제안이 12일 정치권과 증시를 뜨겁게 달궜다. AI(인공지능) 산업 인프라의 폭발적 수요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실적을 견인하면서 초과 세수의 사회적 환원 방안을 고민하고 설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 실장이 띄운 '국민배당금' 화두는 AI 관련 산업의 초호황에 대한 분석에서 비롯됐다.
김 실장은 지난 11일 '차원이 다른 나라 :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라는 제목의 약 7400자 분량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지금의 변화는 단순한 업황 회복이 아니라 '산업구조'와 '국가구조'가 동시에 재편되는 과정은 아닐까"라며 "이 글은 이 파격적인 가설에서 출발한다"고 적었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 연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56% 늘어난 57조원, SK하이닉스는 406% 늘어난 38조원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 '투톱'이 모두 역대급 실적을 거둔 것인데 두 기업의 내년 합산 영업이익은 700조원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올해 우리나라 전체 예산에 버금가는 규모다.
반도체 산업은 수요 증감에 따라 '수요 폭증(호황)→설비투자 확대→공급 과잉(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순환) 산업'이다. 하지만 김 실장은 "이번 수요는 구조가 다르다"고 진단했다. 초기 AI 반도체 투자는 데이터센터 확장에서 출발했지만 수요가 추론 인프라, AI 에이전트, 피지컬 AI, 로보틱스 등 다음 단계로 빠르게 확장·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AI 인프라는 일회성 설비투자가 아니다. 한 번 구축된 인프라가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수요를 만든다"며 "스마트폰 교체 주기처럼 수요가 포화되는 구조가 아니라 인프라 자체가 계속 새로운 수요를 생성하는 구조다. 이번 국면이 과거 메모리 사이클과 다른 이유"라고 봤다.
특히 AI 산업 전환의 국면에서 한국은 기술독점에 가까운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는 진단도 내놨다. 미국은 설계와 플랫폼에서 기술력을 갖췄지만 제조 기반이 약하고 중국은 제조 역량이 있지만 지정학적 신뢰 문제가 걸림돌이다.
김 실장은 "AI 시대의 메모리·인프라 수요가 장기 구조 변화라면 한국은 처음으로 지속적 초과이윤을 생산하는 국가에 가까워질 수 있다"며 "순환형 수출경제에서 기술독점적 성격이 강한 경제구조로의 이동, 이것이 지금 한국 앞에 열려 있는 가능성의 핵심 본질"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유례없는 AI 호황에만 취해 있다가는 '부익부 빈익빈'이 고착화되는 이른바 'K자형 성장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며 초과 세수의 활용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실장는 "나라는 부유해져도 그 부의 분포는 자동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며 "한국은 그간 성장에는 강했지만 성장의 과실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에는 약했다. 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단순한 성장률이 아니라 초과이윤을 어떻게 안정화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칭 '국민배당금' 도입 방안 검토를 제안했다. 올해와 내년까지 업황 호조에 따른 '초과 세수'가 기정사실화한 데다 구조적 호황이 현실화할 경우 초과이윤(초과세수)을 어떻게 활용할지 제도적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2021~2022년 반도체 호황기의 초과세수는 사전에 설계된 원칙 없이 그 때 그 때 소진됐다. 이번 사이클의 규모는 그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록 클 가능성이 있다"며 "그것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흘려보내는 것은 천재일우의 역사적 기회를 허비하는 일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초과 이익의 일부를 현세대의 사회 안정에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분배가 아니라 체제 유지 비용의 성격을 갖는다"며 "노르웨이는 1990년대 석유 수익을 국부펀드에 적립하고 그 운용 수익을 재정 원칙에 따라 사회 전체에 환원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자원 호황을 일시적 횡재로 소비하지 않고 장기적 사회 자산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르웨이은행투자운용(NBIM)은 약 2조달러 규모의 석유펀드를 운용하는 국부펀드로 석유 및 가스 부문의 잉여 수익을 투자하기 위해 설립됐다. 전세계 60~70국 7000~8000개 기업의 투자처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가 고갈되더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게 취지다.
김 실장은 "구조적 초과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제도화할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 만큼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돼야 한다"고 했다.
김 실장은 국민배당금의 용처에 대해선 청년 창업 자산, 농어촌 기본소득, 예술인 지원, 노령연금 강화 등을 언급한 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여지를 열어뒀다.
김 실장은 그러면서 "기술혁명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재설계할지 우리가 먼저 고민하고 토론하며 만들어내는 모델이 AI 시대 국가들의 하나의 표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