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이 29일 6·25전쟁 전사자 발굴 유해 7위(位)에 대한 합동 안장식을 국립대전현충원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진행했다.
이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호국영웅은 △고(故) 최백인 일병 △고 하창규 일병 2위다. △고 전승남 이등중사 △고 김판성 하사 △고 김순식 하사 △고 유제용 일병 △고 박민성 일병 5위의 전사자 유해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최백인 일병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에 입대해 국군 제6사단 7연대 소속으로 배치됐다. 이후 같은 해 9월 6일~13일 전개된 영천 전투에서 북한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영천 전투는 국군 제8사단이 제1·6사단의 각 1개 연대와 함께 영천을 장악한 북한군 제15사단을 몰아낸 전투다. 국군은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 전선 동반부를 방어해낼 수 있었다.
하창규 일병은 1950년 11월에 입대해 국군 제8사단 10연대에 배치됐다. 전선에 투입된 지 약 3개월 만인 1951년 2월 9일, 횡성전투에서 전사했다.
횡성 전투(1951. 2. 5. ∼ 15.)는 중공군 제4차 공세 당시 국군 제3·5·8사단이 강원 홍천 및 횡성 일대에서 중공군 제39·40·42·66군 및 북한군 제5군단과 벌인 격전이다. 중공군의 공세로 8사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고인이 속했던 10연대는 연대장 권태순 대령을 비롯한 지휘부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실종될 만큼 처절한 사투를 치렀다.
전승남 이등중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대대적인 병력 징집 시기에 제주도 제1훈련소로 자원입대했다. 훈련을 마친 뒤 국군 제8사단 10연대에 배치된 고인은 중동부 전선의 격전지였던 백석산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김판성 하사는 1951년 5월 13일 제주도 제1훈련소로 입대했다. 국군 제8사단 10연대에 배치된 고인은 1951년 10월 9일, 백석산 전투를 치르던 중 전사했다.
백석산 전투(1951. 8. 18. ∼ 10. 28.)는 휴전회담의 우위 선점과 군사분계선 확정 시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국군 제7·8사단이 북한군 및 중공군을 상대로 강원도 양구군 북방의 전략적 요충지인 백석산 일대의 고지군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격 전투다.
김순식 하사는 1952년 10월 18일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했다. 당시 아내는 외아들을 임신 중이었다. 국군 제6사단 7연대에 배치된 고인은 중공군 최후공세 시 금성지구전투에 참전 중, 종전을 불과 8일 앞둔 7월 19일 전사했다. 전공을 세운 고인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사후 추서됐다.
중공군 최후공세 시 금성지구전투는 국군 제2군단 예하 6개 사단(수도· 3·5·6·8·11)이 중부전선의 금성돌출부를 탈취하려는 중공군 5개 군(21·54·60·67·68) 예하 15개 사단의 공격을 저지한 전투다. 이를 통해 우리 군은 남한 전력 공급의 생명줄인 화천 수력발전소를 사수하고, 휴전선 확정에 있어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유제용 일병은 1951년 1월 19일에 입대해 8사단에 배치됐다. 이후 전선에 투입된 지 약 한 달 만에 횡성전투에서 전사했다. 박민성 일병은 국군 8사단 소속으로 중동부 전선의 격전지였던 백석산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고인들의 유해는 2007년부터 2025년까지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강원도 철원군, 양구군, 경북 영천시 등 전·후방 각지에서 발굴됐다. 이후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한 유가족 DNA 정보와 대조를 거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최종적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육군에 따르면 이날 안장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전쟁이 끝난 지 70여 년이 지나서야 가족의 유해를 모시게 됐지만, 국가의 예우 속에서 편히 쉬실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놓인다며 끝까지 책임을 다해 준 대한민국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규하 육군참모총장은 조사에서 "육군은 선배 전우분들께서 보여주신 불굴의 용기,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의 정신을 잊지 않고, 그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대한민국과 국민의 소중한 일상을 굳건히 지켜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