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겼습니다" 지적장애인 배려한 쉬운 판결문…그림·해설도

"당신이 이겼습니다" 지적장애인 배려한 쉬운 판결문…그림·해설도

이혜수 기자
2026.06.2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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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문에 첨부된 판결 요약 이미지/사진=서울행정법원 제공
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문에 첨부된 판결 요약 이미지/사진=서울행정법원 제공

"원고 ○○○이 재판에서 이겼습니다. 소송에 들어간 돈은 구청이 냅니다."

한 지적장애인이 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의 판결문이다. 서울행정법원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한국형 사회법원'이 되겠다고 공언한 뒤 나온 첫번째 '이지리드'(Easy-Read) 판결문이다. '피고가 원고에 대해 한 장애정도 미해당 결정 처분을 취소한다. 소송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바꿨다.

2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강우찬)는 지난 25일 지적장애인 A씨가 양천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 정도 미해당 결정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면서 이 같은 이지리드 판결문을 당사자에게 송달했다.

판결문에는 기존에는 볼 수 없던 표현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법원은 구청의 결정을 취소합니다. 취소는 결정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입니다.'다. 판결문에는 A씨 사건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구청의 결정에 대한 효력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의 내용이 읽기 쉬운 문체는 물론 그림, 해설까지 담겼다. 재판부는 27쪽 분량의 판결문 중 4쪽으로 요약된 이지리드 판결문을 작성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번 사례가 대법원이 올해부터 처음 시행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사법지원 예규'에 규정된 이지리드 문서 제공 조항에 따른 첫 이지리드 판결문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를 구성한 판사 3명(강우찬·신옥영·이주일) 모두 대법원 장애법연구회 회원들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올해 '한국형 사회법원' 모델을 추진하며 사회보장 사건 전담재판부를 확대해 장애인·노인·임산부·아동 등 사회적 약자 관련 사건을 전문적으로 심리하고 있다. 이번 판결문도 사법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작성됐다.

판결문에 사용된 그림은 사법정책연구원의 '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판결서 작성 방안' 연구 내용을 대규모언어모델(LLM)에 학습시켜 만든 '스킬'(Skill)을 활용해 제작됐다. 과거보다 제작 환경이 크게 개선돼 비용과 시간이 대폭 줄었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사건은 A씨가 지능검사에서 전문의로부터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으나 양천구청이 A씨의 장애 등록을 인정하지 않은 사안이다. A씨는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학대받고 시설에서 자라왔다. A씨는 중학교 때부터 강박, 폭력적 성향, 양극성 정동장애 유사 증상, 우울증, 뇌전증 등 다양한 정신 질환을 겪었다. A씨는 최근 수년간 세 차례 실시한 지능검사에서 모두 지능지수(IQ) 70 미만 판정을 받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로부터 지적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후 A씨는 2023년 11월 양천구청에 지적장애인 등록을 신청했으나 양천구청은 검사 태도와 어린 시절 검사 결과 등을 이유로 장애 등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불복한 A씨는 이의신청을 냈으나 동일한 결정을 받았고 서울시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제기하고도 기각됐다. 이후 서울행정법원에 양천구청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문에 첨부된 판결 요약 이미지/사진=서울행정법원 제공
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문에 첨부된 판결 요약 이미지/사진=서울행정법원 제공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전문의들의 진단과 법정에서 직접 원고를 관찰한 결과 등을 근거로 A씨를 지적장애인으로 인정하고, 구청의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복수의 정신장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상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때도 틀에 끼워 맞춘 방식으로 장애 유무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판결 논리 전개에 있어 리시아 칼슨(Licia Carlson)의 저서 '지적장애의 얼굴들'을 참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번 판결이 장애를 개인의 의학적 상태를 넘어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바라보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해석에 반영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재판부는 사회법원 취지에 따라 직권으로 A씨의 소송 비용 전액을 소송구조를 통해 지원받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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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수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이혜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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