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수사권이 78년 만에 사라졌다. 사회적 우려와 갖은 논란을 뚫고 검사 수사권이 완전히 박탈되기까지 여당 내 강경파로 꼽히는 추미애 경기도지사, 서영교 법사위원장,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 유시민 작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국회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진행된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민의힘의 표결 불참 속에 찬성 178인, 반대 2인, 기권 1인 등이었다. 이로써 오는 10월2일 출범하는 공소청의 검사는 수사권 행사가 불가능해졌다.
공소청 검사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지 여부는 여권 내에서도 화두였다. 이 대통령은 "아주 최소한의 엄격한 조건 아래 아주 최소한만 하면 좋겠다"고 국회의 숙의를 요청했고, 보완수사권으로 사건 은폐 정황이 드러난 장윤기 사건으로 국민적 우려가 커지자 홍기원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보완수사권 일부 존치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당시 고민정·곽상언·김남희·이소영 의원 등 10명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 중 곽 의원은 이날 표결에서 반대표를, 이 의원은 기권표를 내기도 했다. 법조인 출신인 이 의원은 발의 직후인 지난달 14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왜 보완수사권 폐지가 검찰개혁의 완성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선동에 불과하다"며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이같은 우려가 나오자당내 강경파가 일제히 반박하며 여론전과 세몰이에 나섰다. 예외적이라도 수사권은 수사권이며 이를 통해 수사 범위를 넓히고 정치권 인사들을 공격했던 검찰의 행태가 공소청에서도 반복될 것이란 논리를 앞세웠다. 동시에 수사·기소 분리라는 검찰개혁 대원칙이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하며 공소·기소청 이전에 논의를 서둘러 매듭지어야 한다고 재촉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검찰청 폐지안이 담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관철했던 추미애 경기지사는 당내 우려가 제기된 직후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왜곡과 비틀기가 시작됐다. 기가 찬다"며 "검사의 직접수사권을 지키려는 주장에 불과하다. 지금까지의 검찰개혁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후임인 서영교 법사위원장은 방송에 출연해 당내 우려 제기에 대한 물음에 "언론 보도 과정에서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 법사위원장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더 반영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 이미 검사는 수사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 아니냐"며 "무소불위의 권한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같은 사람이 나온 것"이라고 발언했다.
제22대 전반기 국회 법사위 간사이자 민주당 검찰개혁 논의를 주도했던 김용민 민주당 의원도 "검사 수사권을 예외적으로라도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준다는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국토 개발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패 방지를,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맡기는 것보다 위험하다"며 여론을 흔들었다.
법사위 소속의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도 "보완수사권은 수사권이다. 공소청 검사에 수사권이 남아 있으면 검찰개혁은 유명무실한 것"이라고 반박하며 여당 강경파에 힘을 실었다. 제한적 상황에서의 보완수사권 존치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홍기원 민주당 의원을 향해 "법조인도 아닌 데다 검찰개혁 국면에서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법안을 갑자기 어떻게 마련한 건지 어떤 논의와 고민을 한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차기 당 대표 선거에서 연임에 도전하는 정청래 후보도 적극적인 지원사격으로 당내 강경 지지층 표심을 자극했다. 정 후보는 "검찰개혁은 민주당의 상징", "불가역적으로 못을 박아야 한다" 등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냈다. 당내에서 제기된 이견은 '반민주당 정체성'이라고 했다.
정치권 바깥의 강경파도 여론을 주도했다. 유시민 작가는 이 대통령의 숙의 요청을 민주당 전통 지지층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했다. 복수의 강성 지지층 선호 유튜브에 출연해 "이 대통령은 필연적인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 검찰개혁이 1년 넘게 안 되는 것은 이 대통령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등 숙의를 주문한 이 대통령을 전통적 민주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묘사하며 지지층 반감을 키웠다.
강성 당원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방송인 김어준씨는 보완수사권으로 진실이 드러난 장윤기 사건을 두고 "이런 사건은 1년에 몇 건씩이나 있다"며 관련 보도를 한 언론사의 저의를 의심했다. 이런 움직임이 검찰개혁의 동력을 약화시키려는 세력의 준동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같은 움직임 끝에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됐다. 김 의원은 "빈틈이 있다면 보완하면 될 일"이라고 했고 정 후보는 "미진한 부분은 국민 눈높이에 맞게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홍기원 의원은 전날 뉴스1 유튜브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면 다시 검사에 수사권을 주자는 여론이 생기게 된다. 법 조항만 바꾸면 되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되면 곧바로 원상회복되는 것"이라며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잘했어야 하는 것이다. (보완수사권 존치 법안도) 성공적인 검찰개혁을 위해서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반대표를 낸 곽 의원은 표결 직후 SNS에 "곧 다가올 국민 고통이 눈에 보이는데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