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전략에 발맞춰 국회도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하는 등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책금융기관의 기후위기 대응은 미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의 실질적인 탄소 영향력을 알 수 있는 지표인 금융배출량을 산정하고 있는 곳이 국책은행 3곳 중 IBK기업은행 한곳에 불과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17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금융배출량을 산정해온 IBK기업은행과 달리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금융배출량을 산출하지 않고 있었다. 두 곳 모두 산정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으나 완료 시점은 제시하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의원실에 '현재 국내 전환금융 제도가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자금 수요자(기업)들의 탄소배출량 목표, 이행 전략 등이 구축되는 시점에 금융배출량 계획 수립이 가능해진다'고 전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금융배출량 측정을 위한 관리체계를 수립해 현재 금융배출량 측정을 위한 전산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시스템 구축 이후 측정값 안정화를 거쳐 정부 공시제도, 기업들의 배출량 공개 추이 및 당행의 정책금융기능 등을 감안해 배출량 공개 및 감축목표 수립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책은행이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이에 하나·신한·우리·KB·NH농협 5대 금융지주는 수년째 금융배출량을 산정해 공시해오고 있다. 지난해 기준 배출량 합계는 2억 3277만 톤이었다. 기후위기 대응을 선도해야 할 정책금융기관이 오히려 민간에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금융배출량은 은행이 대출과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발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뜻한다. 어떤 산업에 얼마나 자금을 공급하고 있고 그 결과 얼마만큼의 탄소가 배출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금융회사가 직접 쓰는 전기·연료에서 나오는 배출량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금융배출량이 은행의 실질적인 탄소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기업이 기후 등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를 사업보고서에 의무적으로 담도록 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를 반영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2027년 1월 1일 이후 개시하는 사업연도의 사업보고서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공시 의무 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권상장법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현재 금융배출량을 산정하고 있지 않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상장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대상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지혜 의원은 "금융배출량 산정은 은행 자금이 어느 산업으로 흘러가 얼마만큼의 탄소를 만드는지 확인하는 출발점으로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기후공시 법률 개정 논의 과정에서 국책은행도 금융배출량 산출과 공시를 통해 정책금융기관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