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세대 '특급' 아파트…화재 관리는 2급 관리자가

신현식 기자
2015.01.16 05:01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전경. 기사의 특정 사실과는 관련없음./사진=머니투데이 DB

최근 의정부와 양주, 남양주 아파트에서 잇따라 대형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허술한 아파트 소방안전관리자 관련 규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흘간의 이론교육만으로 응시자격이 부여되며 80% 이상이 합격해 '운전면허보다 쉬운 시험'이라는 평가를 받는 2급 소방안전사가 수천세대 이상의 대단지의 소방안전을 책임지는 중책을 담당하게 돼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십년전에 만들어진 규정이 별도의 손질없이 적용되며 이같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가 다르게 대형화되고 아파트 현실을 규정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며 소방 안전 대책에 구멍이 나고 있다는 것이다.

◇ 수천세대 '특급' 아파트에도 화재관리자는 2급?

소방안전관리자는 소방안전관리대상물의 화재 관련 업무의 총 책임자다. △소방계획서의 작성 및 시행 △자위소방대의 조직·운영·교육 △소방시설의 유지·관리 등을 담당한다. 건물 관계인에게 소방시설 수리 등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책임이 있다.

일반적인 빌딩의 경우 건물이 11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1만5000㎡ 이상일 경우 1급, 30층 이상 연면적 20만㎡ 이상은 특급 소방안전관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형 아파트 단지의 경우 주거시설임에도 2급 소방안전관리자들이 업무를 맡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내 10대 아파트단지의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상황을 조사해 본 결과 2급 소방안전관리자만 선임했다고 답한 곳이 6군데였다. 5000세대 이상의 아파트의 경우도 2급 1명이 해당업무를 담당하는 곳도 있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예외적으로 아파트만 규모에 상관없이 2급으로 규제가 완화돼 있다"며 "일반적 수준의 안전지식만 갖춘 2급 관리자가 각종 방재업무를 책임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 2급 소방안전관리자 시험 '운전면허시험보다 쉽다?'

자격증 따기가 지나치게 쉽고 이론 위주로 돼 있는 것도 문제다. 한국 소방안전협회에 따르면 2014년 2급 소방안전관리자 시험의 평균 합격률은 80%에 달했다. 협회 관계자는 "2급 시험은 4일간 교육을 받고 마지막날에 시험을 치는데 보통 80~85% 정도가 합격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나흘간 이뤄지는 교육도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필기시험 전 교육은 이론 교육 위주인 데다, 시험에 나오는 부분만을 가르치는 '입시위주' 교육이라는 것이다. 결국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식만을 가진 관리자들이 중책을 맡게 되는 셈이다.

김유식 한국국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며칠간 구색 맞추기식 교육만 받은 2급 관리자들은 실무 경험이 전무한 경우가 많다"며 "예방을 하든 대응을 하든 경험과 지식이 중요한데 내용도 모르는 안전관리자들이 어떻게 실질적으로 대응을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 수십년간 방치된 규정…국민안전처 대책 실효성 없어

전문가들은 대규모 아파트가 없던 도입 당시의 낡은 규정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소방안전관리자 제도의 전신인 방화관리자 제도는 1968년 처음 도입됐다.

아파트가 소방대상물에 포함된 것은 1990년부터다. 건물이 고층화, 대규모화 되며 1992년부터는 1급과 2급 대상물을 나누기 시작했지만 유독 아파트는 층수, 규모와 상관없이 처음 규정대로 2급 대상물로 남았다.

국민안전처는 지난 7일 각 아파트 단지에서 300세대마다 1명의 소방안전보조자를 선임토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급 소방안전관리자의 지휘를 받는 소방안전보조자의 숫자만 늘려봐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보조자의 자격에 대해 "일반적 기술자격증이 있는 사람이면 다 되고, 소방안전관리 자격증이나 강습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 해당 건물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면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지역 일선 소방서에 근무하는 한 소방위는 "아파트에서 1급 안전관리자를 선임하려고 해도 관리비 문제로 꺼려하는 주민들이 많다"며 "안전관리자가 '방화문을 열어두지 마라' '소화기를 충분히 설치하라'고 해도 잔소리로 치부하면서 오히려 관리자를 교체하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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