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의 '위안부' 협상이 이뤄진 가운데 상당수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위안부 동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피해 보상의 형식이 범죄에 대한 '배상'이 아닌 별도 기구를 통하는 외교적 해법에 그친 것에 아쉽다는 입장이 많았다. 반면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들의 건강과 한·일 양국관계를 감안하면 일본의 진일보한 입장을 이끌어낸 '현실적 해법'이라는 평가도 일부 제기됐다.
29일 외교·법학역사 전문가들은 머니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일본이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반성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지만, 본질적인 '법적 책임'을 지우지 못한 것이 한계라며 한 목소리로 "불만족스럽다"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일본의 국가적 범죄로서 피해자에 대한 처벌·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책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하지만, 결과에 비춰볼 때 양국 정부가 이 같은 전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협상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90년대 일본이 '도적적 책임'을 지겠다고 사과한 것과 비교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며 "책임도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일본이 제공키로 한 10억엔 규모의 기금도 법적 책임에 대한 '배상' 성격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규모 역시 피해자의 정신·의료적 보상비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가 기금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과거보다 나아진 대목이지만, 일본 의회 승인 과정에서 반려될 가능성을 남겼다"는 평가다.
실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사가 사전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도 가장 핵심적인 한계로 꼽혔다. 특히 피해자와 사전 논의 없이 '불가역적' 협상을 타결한 것과 관련, 향후 피해자들이 직접 위안부 문제를 재론할 여지마저 축소시켰다는 평가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해득실을 따지는 '협상'이 아니었고, 범죄를 문제삼는 자리였어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 '불가역적'이라는 문구를 협상에 포함시킨 것은 버젓이 생존해 계신 피해자들에게 결례를 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생존해 계신 할머니들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정부가 이를 대신한 것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조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도 "이번 협상은 한국 정부가 (피해자를 무시하고) 월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의 요구 사항이었던 '평화의 소녀상' 이전 문제를 윤병세 외교장관이 언급한 것 자체만으로도 부적절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소녀상 문제는 국내 문제라고 버텼어도 충분했다"고 말했다. 이준식 민문연 연구위원도 "국내의 소녀상이 외교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 협상이 향후 양국의 역사교과서 제작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일본의 경우 교과서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 자체를 언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를 한국 정부가 지적할수도 없게 됐다는 것.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는 "이번 협상에서는 후대 교육에 대한 논의가 완전히 빠졌다"며 "박근혜 대통령 임기와 한일 국교 50주년을 맞아 관계회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무리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한계에 공감하면서도 80~90대 고령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건강을 고려할 때 한시가 급한 협상을 정부 차원에서 마무리했고, 일본의 보다 진일보한 입장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나왔다.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이 손상됐다는 것을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했다"며 "현실적 제약을 고려할 때 진전을 이룬 회담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소장은 "위안부 문제 자체가 타결이 어려운 사안이었기 때문에 양국이 어떻게든 합의를 이끌어낸 것 자체는 평가할만 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한국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나왔다. 이종판 한양대학교 아태연구센터 연구위원은 "한·일 외교관계를 법적인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이번 회담의 결과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일본 내 여론이 지배적인데, 이는 한국에게 득이된 협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