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빵 뺑소니' 음주운전 자백했는데 무죄, 왜?

김만배 기자, 이태성 기자, 양성희 기자, 한정수 기자, 김종훈 기자, 이경은 기자
2016.03.26 05:30

[서초동살롱 <108>]사고직후 범인 음주사실 확인 어려워…"엄격한 잣대 필요" 지적도

'크림빵 뺑소니 사건' 피고인 허모씨/사진=뉴스1

지난해 1월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이른바 '크림빵 뺑소니'사건의 결론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 24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등의 혐의로 기소된 허모씨(38)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허씨에게 적용된 음주운전 혐의가 무죄로 인정돼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20대 가장의 생명을 앗아간 '크림빵 뺑소니'사건

사범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교육자의 길을 꿈꾸던 20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어린 나이에 화물차 운전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고된 하루를 보내면서도 피곤한 내색 한 번 하지 않던 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임신 7개월 차인 아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주지 못해 한없이 미안해하며 대신 크림빵을 사들고 가던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동생을 뒷바라지하며 부모님을 부양하는 효자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던 '크림빵 뺑소니' 사건의 피해자 강모씨(당시 나이 29)의 사연입니다. 강씨의 사고는 1년 전 발생했습니다.

2015년 1월10일 새벽 1시30분께 충북 청주의 한 도로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강씨는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쓰러졌습니다. 강씨를 친 의문의 차량은 그 자리에서 달아났고, 도로에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강씨와 크림빵 봉지만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마침 사고 현장을 지나가던 한 택시기사가 강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강씨는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뺑소니 범인을 잡기 위한 경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강씨가 사고를 당한 곳에는 CC(폐쇄회로)TV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통행량이 적어 가해 차량을 봤다는 운전자들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인근 지역의 CCTV 영상을 확보했지만 어두운 새벽에 발생한 사고라 판독하는 데 난항을 겪었습니다. 제보나 수사단서를 제공한 시민에 대해 경찰이 포상금 500만원을, 유가족이 별도로 30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었지만 수사는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들끓는 여론…'사건전담수사본부' 설치·범인 검거까지 19일

강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며 하루빨리 뺑소니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결국 관할 경찰청인 충북지방경찰청은 '사건전담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박세호 흥덕경찰서장을 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뺑소니 사건에 전담수사팀이 마련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CCTV 영상을 판독하는 한편 중고자동차 거래사이트 회원 등 네티즌들이 차량 번호판 복원을 시도하는 등 범인 검거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들이 더해졌습니다. 결국 사건이 발생한 지 19일째, 가해자 허모씨(38)가 자수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허씨는 당시 동료들과 소주 4병 가량을 마신 뒤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허씨는 사고 이후 자신의 차량을 부모님 댁으로 옮긴 뒤 부품을 수리해 증거를 감추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음주 운전자의 혈중알코올 농도가 시간당 평균 0.015%씩 감소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사고 당시의 음주 상태를 추정하는 방법, 이른바 '위드마크 공식'을 활용해 허씨가 혈중알코올농도 0.260% 상태에서 운전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범인이 '음주운전' 자백하는데도 법원은 "무죄"…왜?

지난해 3월 허씨에 대한 첫 재판이 청주지방법원에서 열렸습니다. 4개월여 심리 끝에 재판부는 허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허씨가 사고 사실을 인지하고도 구호 조치 없이 도주했으며 이로 인해 피해자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사고로 파손된 부분을 직접 수리하는 등 범행을 은폐하려 한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허씨에게 적용된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허씨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가정된 허씨의 체중, 음주 종료 시간, 섭취한 알코올 양 등의 요소들이 충분히 입증되지 못했다"며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당시 허씨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1% 이상이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판결은 2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돼 지난 24일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범인이 수사과정에서 음주운전 사실을 자백했는데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사고 직후 허씨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측정된 적이 없어 사고 당시 음주량을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점을 무죄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위드마크 공식의 불확실성을 문제 삼은 겁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사고 직후 달아난 뺑소니 범인의 경우 음주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위드마크 공식, 본인 또는 주변의 진술 등이 유일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원의 이같은 판단을 악용, 음주운전 시 일단 도주하는 범죄가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음주로 인한 뺑소니 사고 실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0~2014년 5년간 발생한 뺑소니 사고 5만3081건중 29.7%인 1만5741건이 음주 뺑소니였습니다. 뺑소니 사고 3건 중 1건이 음주로 인해 발생한 셈입니다.

이때문에 음주뺑소니 사건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범인을 찾기 힘들고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은 뺑소니 사건, 또 그 원인이 운전자의 음주일 때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와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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