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명문가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간 '묘지전쟁'은 392년 만인 2006년 이른바 '평화협정'을 맺으며 마무리됐다. 영조의 중재 명령도 받아들이지 않고 유배까지 가며 이어오던 갈등은 결국 두 가문이 한발씩 물러나는 것으로 해결됐다.
2006년 4월10일 두 문중의 후손들은 문화재청의 중재로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 자리에서 청송 심씨측이 심지원묘 등 19기를 인근으로 이장하고 파평 윤씨측은 이장에 필요한 부지 2500평을 조건없이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두 명문가간 질긴 싸움은 1614년에 시작됐다. 청송심씨의 수장으로 영의정까지 지낸 심지원(1593~1662)이 사패지지(임금이 내려준 땅)에 자신의 부친 등 일가 묘를 조성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근에 있던 파평 윤씨인 윤관 장군묘를 파헤치게 된 것이다. 파평윤씨 일가는 이에 반발해 100년이 지난 1763년 심지원의 묘 일부를 파헤쳤다.
청송 심씨 일가와 파평 윤씨 일가는 상대가 서로의 조상묘를 훼손했다며 처벌을 요구했다. 당시 왕이었던 영조가 “두 묘를 그대로 받들라”며 화해를 종용했지만 두 문중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발하는 두 가문에 화가 난 영조가 1765년 심정회, 윤희복을 태형에 처하고 귀양까지 보냈지만 두 문중간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약 200년 뒤인 1969년 양가 후손들이 양해각서를 교환하는 등 해결의 기미도 있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그렇게 이어져 오던 두 가문간 갈등은 2006년에서야 봉합됐다.
합의한 지 10년이 지난 2016년 두 가문은 조상들과는 달리 평화로운 상태다. 청송 심씨 대종회 관계자는 “지치기도 하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합의했다”며 “10년 전 원만히 해결한 후론 별다른 갈등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