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n 시대'… 탐색의 한달

세종=문영재 기자, 이미호 기자
2016.10.27 05:30

[청탁금지법 시행 한달] "납작 엎드린 대한민국… 유권해석 정비 시급"

'김영란법' 시행 첫날이었던 지난달 28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구내식당에 임직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

28일 시행 한 달째를 맞는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그동안 '관례·관행'이란 이름의 악습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태세다.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인 공직자와 학교 교직원 등은 물론 기업이나 일반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납작 엎드렸다. 자칫 '시범 케이스'에 걸릴 것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비판 여론도 여전하다. 청탁금지법 자체가 광범위한 행위 규제인만큼 사회 정서와 맞지 않는 '인간관계 단절'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이날까지 접수된 청탁금지법 위반신고 건수는 모두 44건으로 집계됐다. 법 시행 이후 한 달 간 하루 1.5꼴로 신고가 이뤄진 셈이다.

권익위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신고가 39건, 방문·우편접수는 5건이었다. 유형별로는 부정청탁 17건, 금품수수 25건, 외부강의 2건으로 나타났다. 청탁금지법 질의건수는 모두 9351건에 달했다. 그러나 답변은 1570건에 그쳤다.

청탁금지법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의 한 중식당. '3만원 감사 세트' 신설 메뉴 안내를 하고 있다.

법 시행 뒤 가장 먼저 변화상이 감지된 곳은 정부 부처가 모여 있는 세종관가다. '각자 내기' 문화가 확산되면서 청렴사회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 이면에는 공무원들 사이에선 자기 방어를 위한 외부 민원인 접촉 기피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경제부처 한 공직자는 "애매한 민원 전화 대신 가급적 문서 요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정청탁에 휘말릴 수 있어서다. 세종관가 주변상가 음식점 가운데 문을 닫는 곳도 생기고 있다. 매출이 줄자 종업원을 내보내는 곳도 목격됐다. 반면 외부 시선을 피해 세종청사 내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공무원은 크게 늘었다.

청탁금지법은 기업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공직은 물론 민간에 몰아친 때 이른 한파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제약사들은 혹시 모를 불똥을 피하기 위해 의사를 상대로 한 식사비 한도(3만원)를 새로 정했고, 호텔업계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서울 중심가 특급호텔들은 매출이 30% 줄어 울상이지만 비즈니스호텔은 1인당 식비가 3만원이 넘지 않아 매 끼니 때마다 만석이다.

화훼업계는 법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경조사 때마다 넘쳐나던 화환은 이젠 옛 말이 됐다. 교육현장에서는 캔커피 하나, 김밥 한 줄 건네는 관행이 싹 사라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초·중·고교 교사들은 학생 평가의 신뢰성이 높아지는 등 교육현장이 투명해졌다며 환영했지만, 대학가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조기취업자에 대한 취업계(학점 인정) 문제가 아직 남아 있어서다.

청탁금지법은 저녁식탁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외부 저녁식사 모임이 눈에 띄게 줄면서 '집밥'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집밥족 증가는 덩달아 마트의 매출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탁금지법이 민간영역까지 확대되면서 유권해석을 지금처럼 엄격히 할 경우 경제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민간인까지 포함시켜 경제 행위를 광범위하게 규제하면 중장기적으로 경제 위축이 불가피하다"며 "시급히 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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