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내린 날, 130만 촛불 물결…"한판 신나는 축제"

김평화 기자
2016.11.26 21:22

춤추고 노래하는 '즐기는 시위'…난타공연·박근혜포토존·우병우 두더지게임도 등장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열린 5차 촛불집회에 등장한 '박근혜 포토존' /사진=김평화 기자

첫눈이 어울렸다. 감동과 설렘, 기쁨과 웃음이 가득한 축제였다. 외침은 단호하고 엄중했지만 여유와 성찰, 해학과 풍자는 잃지 않았다.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던 만큼 각양각색의 시민들이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해 거리를 물들였다.

올 겨울 서울의 첫눈이 내린 26일 광화문 광장. 코끝이 시리고 날숨엔 하얀 입김이 나오는 쌀쌀한 날씨였지만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이날 열린 5차 주말 촛불집회에서는 경기 수원에서 왔다는 한 시민이 소를 타고 등장했다. 소에는 '근혜씨 집에 가소'라는 문구를 붙였다. 경찰은 광화문 교보문고 인근에서 안전을 이유로 소 두 마리 행진을 막았다.

고래도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대통령의 (참사 당일) 7시간을 밝히라"며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대형 고래 모양 풍선을 들고 왔다. 고래 등에는 단원고 학생들 모형을 태웠다.

유가족들은 "바닷속 아이들이 고래 등을 타고 살아 돌아와 만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아이들도 하늘에서 이 집회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평화시위를 상징하는 '꽃 스티커'를 차벽(경찰 버스)에 붙였던 시민들은 이번에는 생화를 준비해 붙이기도 했다.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열린 5차 촛불집회에서 일부 시민들이 경찰차벽에 '꽃 스티커'와 생화를 붙였다. /사진=윤준호 기자

포토존과 오락실 등 축제 마당 단골손님들도 보였다. 시청광장 부근 대한문 앞에는 '박근혜 포토존'이 마련됐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얼굴과 새누리당 로고가 새겨진 가면을 쓰고 목에 종이칼을 찬 시위 참가자들이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일행 중 한명은 "박근혜를 저희가 잡아왔다"며 다른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맞은편에선 '하야만사성' 포스터를 붙인 소형트럭에서 '박근혜 그만 두유'라고 이름 붙인 음료를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우 전 수석 사진이 붙은 '펀치'와 '두더지 잡기' 오락기도 등장했다. 두더지에는 '미르재단', 'ㅂㄱㅎ', '정부' 등이 쓰여 있었다.

재치 넘치는 패러디와 피켓 문구에도 이목이 쏠렸다.

흰색 셔츠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얹은 '최순실 코스프레'와 포승줄에 묶인 채로 박 대통령 가면을 쓴 참가자가 돌아다녔다. 말머리 가면을 쓴 한 시민은 자신의 몸에 '유라꺼'라고 쓰인 종이를 붙였다. '1588-순실순실 OK! 대리연설'이라는 광고 패러디 피켓도 인기를 끌었다.

청와대가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대량 구매한 것을 비꼰 '하야하그라', '박근혜는 청와대를 비우그라' 등의 문구도 눈에 띄었다. 박 대통령이 구치소 창살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을 연출한 시위도 있었다.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열린 5차 촛불집회에 난타공연이 등장했다./사진=김평화 기자

신명나는 공연도 이어졌다. 세종대로사거리 한복판에선 난타공연이 벌어졌다. 빨간 곱슬머리 가발을 쓴 공연단 20여명은 춤을 추며 타악기를 연주해 분위기를 돋구었다. 시위 참가자 수백명이 이들을 둥글게 둘러싸는 등 장관이 연출됐다. 시민들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즉석 춤판도 벌였다.

한양대학교 총학생회는 '박근혜를 깜방으로'라고 외치며 시민들에게 건빵을 나눠줬다.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 20여명은 흰색 가면을 쓴 채로 '시대가 예술을 부를 때 예술은 침묵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을 들고 무언시위를 벌였다.

노래도 촛불집회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 시위대는 박 대통령이 즐겨 시청한 것으로 알려진 드라마 '시크릿가든' 배경음악으로 배우 현빈이 부른 '그남자'와 서태지가 부른 '하여가'를 개사해 박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기도 했다.

무대에 오른 가수 안치환씨가 대표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로 개사해 불러 눈길을 끌었다. 가수 양희은씨가 '아침이슬'을 부르자 시민들이 다 함께 같이 부르는 이른바 '떼창'으로 호응하는 광경도 연출됐다.

이날 집회에는 서울에서만 주최 측 추산 130만명(저녁 8시 기준)이 참석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경찰은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던 12일과 같은 26만명(저녁 7시10분 기준)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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