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소리를 내는 전투기들이 날아다니면서 온 마을을 폭격했어요. 집은 불타고 제 남동생은 반군에 끌려가 결국 죽었어요. 지금 예멘은 마치 지옥 같아요."
세계 난민의 날을 맞은 20일.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제주출입국청)에서 만난 아마르씨(42)는 예멘에서의 기억을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반군들이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고 그들의 편이라고 대답하면 군대로, 그렇지 않으면 감옥으로 끌고 간다"며 "정말 살고 싶어서 예멘을 떠나 제주에 왔다"고 말했다.
아마르씨는 수도 사나의 한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타하씨(33)와 함께 예멘을 떠났다. 타하씨의 동생도 반군에 끌려가 감옥에 갔다. 이들은 예멘을 떠나 수단, 인도네시아 등을 거쳤지만 어느 곳도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비자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제주를 찾았다.
제주에 도착한 것은 5월29일. 사흘 뒤인 6월1일부터 예멘인의 무비자 입국이 금지됐다. 아슬아슬하게 한국행 막차를 탄 셈이다.
아마르씨는 "이곳에서 어떤 일이든 좋으니 일을 하고 싶다"며 "지금까지는 한국 사람들이 먹을 것도 주는 등 도와줘서 살 수 있었다"고 했다. 타하씨는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며 "우리는 생존이 목적이고 절대 사고 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이 가진 것은 가방 하나에 담긴 옷 두벌과 속옷뿐이었다.
이날 제주출입국청은 이전과 달리 다소 한가한 모습이었다. 5월까지 한국에 도착한 예멘인 중 549명이 난민 신청을 마쳤다. 이들 중 약 400명이 양식업·요식업 등 분야에서 직업을 구했다.
난민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낯선 이들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제주 경찰은 지난달 중순부터 특별 순찰을 하고 있다. 주로 예멘인들 숙소와 유흥가를 중심으로 하루에 3~4번 추가 순찰을 나간다.
이날 오후 김상훈 제주동부경찰서 오라지구대장을 따라 순찰에 동행했다. 예멘 난민들은 얼마 전만 해도 200명 이상이 오라지구대 관할에 모여 살았지만 직업을 구하면서 지금은 상당수가 떠났다.
가장 예멘인이 많이 살았던 한 숙소를 먼저 찾았다. 100명이 넘게 살던 이 숙소에는 지금 10명 정도만 남았다. 이 숙소를 운영하는 김우준 대표(53)는 "사람들이 피부색이 달라 편견을 갖지만 이들은 대부분 순진했다"며 "이들이 살았던 한 달여간 큰 말 다툼 한 번 없었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구해 떠난 사람들도 대부분 방값을 내고 떠났다.
지금은 5~6명 정도만 거주하는 또 다른 한 숙소에는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먹거리를 제공하는 등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숙소를 운영하는 안순옥 대표(64)는 이들을 위해 양파·계란 등 식재료를 따로 사서 제공했다. 안 대표는 "사정이 딱해서 방값을 1만원 정도 깎아주기도 했다"며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도 얼른 취업을 해서 먹고 살길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순찰은 예멘인이 주로 거주하는 숙소 위주로 진행됐다. 김상훈 대장은 숙소 주인들에게 "한국을 찾은 예멘인들을 잘 대해주고 경찰에 협조해줘서 고맙다"며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경찰에 연락해달라"고 당부했다.
주민들 사이에 반감과 불안이 없는 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택시기사는 "우리나라와 이슬람은 문화나 언어적으로 차이가 있지 않냐"며 "이들이 들어오면 말도 안 통하고 사고를 칠 우려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훈 대장은 "가끔 순찰을 하다 보면 불안을 호소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걱정과 달리 오라지구대에 예멘인들이 저지른 사건·사고는 아직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미담 사례는 있다. 오라지구대 관계자는 "한 번은 예멘인 4명 정도가 같이 지갑을 주웠다며 지구대를 방문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날 제주에서 만난 예멘인들은 "단지 평화로운 사회에서 살고 싶을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숙소에서 인터뷰에 응한 하메스씨(51)는 "예멘 사람들은 모두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났고 절대 사고 치지 않을 것"이라며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서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