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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헌재)가 지난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 이후 7년 만에 달라진 헌재 인적 구성과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사실상 위헌인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렸다. 1953년 형법에 낙태죄 조항이 도입된 이후 66년만이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오후 2시 헌재청사 1층 대심판정에서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불합치 4 : 단순위헌 3 : 합헌 2' 의 의견으로 최종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해당 조항은 2020년말까지 개정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낙태죄 폐지에 대해 법조인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모습이다. 법조계에서도 전면 낙태 금지는 권리 침해 성격이 크다며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이번 헌재 결정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자기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형법 270조 1항은 의사나 한의사 등이 동의를 얻어 낙태 시술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동의가 없었을 땐 징역 3년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이번 결정에 대해 젊은 변호사들은 대체로 개정 입법의 형태나 방향이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곽준영 변호사(법무법인 다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충돌을 해결하기보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는 자기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한 것"이라며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여권 신장에 따른 사회 여론의 변화,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의 변화 등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과거 호주제 폐지와 같이 앞으로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면서도 "위헌과 합헌 의견 사이에는 타협하기 어려운 대립이 있고 현명한 개정 입법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홍규 변호사(법무법인 폴라리스)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점에서 낙태죄의 필요성은 인정된다"면서도 "현행 제도는 실질적으로 태아를 보호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낙태죄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헌재의 결정을 설명했다.
낙태죄 전면 폐지가 아닌 일부 변화로 유지될 것이란 예상도 있었다. 이필우 변호사(입법발전소)는 "이번 결정은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더욱 보호하게 된 것"이라며 "태아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는 인간 생명의 발달 단계에 따라 구별하게 보아야 한다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전면적 낙태 금지 보다는 시기별로 나눠 제한하는 방향 등으로 개정이 필요하단 얘기다.
이번 결정으로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의 권리 보호도 이뤄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충윤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남성이 여성과 함께 병원을 가는 등 임신중절 행위를 돕는 경우 방조범으로 처벌받았다는 점에서 남성의 권리 역시 침해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헌재가 2020년 말까지 관련 개정 입법이 필요하다고 한 것에 대해 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정음)은 "미국은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을 기준으로 낙태죄 허용여부를 판단하고, 영국은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24주 이내의 일정한 요건을 갖춘 낙태를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을 기준으로 낙태죄의 기준을 정할 것으로 보이고 그 판단에 있어서 외국의 입법례와 범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