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4·15 총선 정국이 급속히 냉각된 가운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역구에서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서울 광진구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설·추석 명절에 오 전 시장은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경비원·청소원들에게 명절선물 형태로 1회당 5만원~10만원씩 총 120만원을 줬다는 혐의를 받는다.
공직선거법 제113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지방의원·지자체장 등 선출직과 정당 대표자 그리고 선출직에 출마하려는 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포함)와 그 배우자는 상시적으로 '일체의 기부행위'가 금지된다. 선거에 관한 선물인지 여부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금지된다.
선출직 중에선 유일하게 '대통령'만 '일체의 기부행위 금지'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명절선물은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 대통령은 현재 헌법상 연임이 없어 재출마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도 선거에서 특정 후보나 정당을 돕기 위한 기부행위를 해선 안 된다. 선거법 제115조는 '누구든지' 후보자 또는 그 소속 정당을 위하여 기부행위를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따라서 법적으로 오 전 시장이 경비원·청소원들에게 건넨 돈은 비교적 소액이고 '선의'에 의한 명절 보너스 성격의 것이라 해도 불법에 해당한다.
해당 조항이 소위 '오세훈법'으로 부르는 정치개혁 3법(정당법·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에 포함된 개정 내용이었기 때문에 '오세훈이 스스로 만든 오세훈법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오세훈법'이란 별칭으로 2004년 개정되기 전에도 선거법 제113조에 의해 후보자(혹은 후보자가 되려는 자)와 그 배우자는 선거 6개월 이전부터 선거당일까지 일체의 기부행위가 금지돼 있었다.
오 전 시장의 혐의는 지난해 설과 추석 그리고 올해 설까지 모두 3차례 명절 금품을 건넨 것이다. 이중 지난해 설과 추석은 강화된 오세훈법에 해당하는 것이 맞지만 올해 설에 준 격려금은 2004년 개정전 선거법에 따라도 위반이 성립된다.
이필우 변호사(입법발전소)는 "오 전 시장과 경비원·청소원들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면 기소가능성이 높다거나 당선 무효형이 나올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면서도 "현행법 위반인 점은 명백하고 피고발인이 오 전 시장인 점을 고려하면 기소까지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거법에 의해 명절 설 선물은 선출직에 뜻 있는 이들에게 금지된 지 오래됐지만 실제로는 지방 지역구에선 여전히 선물이 오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긴 어렵다.
법률가 출신에 지방선거와 총선을 여러 번 겪은 오 전 시장 조차도 "경비원에게 명절마다 줬던 격려금이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선거법은 우리 실생활의 관행과는 다르다고 느낄 정도로 엄격하게 돼 있다. 오 전 시장은 "치매끼가 있는 어머님이 매일 데이케어센터 차량으로 귀가하실 때 매번 경비원들께서 집까지 동행해주시는 신세를 지게돼 늘 고마운 마음이었다"며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부터 경비원들께 명절 보너스는 당연히 드릴 수 있는 일이라 여겨왔고 아무리 선거법이 엄하다고 하나,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처벌받을 일인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법과 관행의 먼 거리 때문에 최근까지도 선출직 정치인들이 명절 선물로 선거법 위반에 해당돼 유죄가 선고되고 있다.
이항로 전 전북 진안군수는 지난 2017년 설·추석을 앞두고 7만원 상당의 홍삼 제품 210개를 선거구민에게 나눠준 혐의로 지난해 10월 17일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지난 설 선물로 황교안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대표가 육포와 한과 등을 조계종 스님 등 각계 인사들에게 선물한 것도 엄격히 따지면 선거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
정당 대표자도 국회의원이나 후보자 등과 마찬가지로 일체의 기부행위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정당 대표자가 의례적으로 명절 선물을 보낼 수 있는 건 당 소속 직원들에게만 가능하다. 따라서 정당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에게 명절 선물을 정당 대표자가 자기 명의로 보내는 것도 선거법에 저촉되는 행위다.
각 정당은 명절에 법에 따라 선물이 허용되는 당내 인사들 뿐 아니라 외부 주요 인사들에게도 선물을 보내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선관위는 이 부분에 대해선 특별히 문제 삼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이 명절에 선물을 전혀 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구민이나 선거구에 연고가 있는 자가 아닌 지인들에겐 선물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선거구에 연고가 있는 지 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근엔 지인에 대한 명절 선물도 크게 줄어 든 상황이다. 아예 명절 선물을 일절 보내지 않는 의원도 적지 않다.
그런데 국회의원 중 서로 선물을 주고 받아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비례대표인 경우다.
만약 미래통합당 비례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비례의원과 서로 명절선물을 주고 받았거나 동료의원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다면 선거법에 저촉된다.
선거구가 전국구인 비례의원은 전국 유권자가 모두 '선거구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례대표 의원의 선물은 그 대상이 누구냐에 관계없이 선거법에 금지된 '선거구민에게 금품제공한 행위'에 해당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매 명절마다 '설·추석 관련 정치관계법 안내'책자를 배포한다. 선거법이 복잡해서 명절 선물 외에도 지켜야할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 단체문자, 현수막, 시장방문 중 금지행위 등 매 명절마다 강조해도 각 정당과 국회의원이 위법행위를 반복할 정도로 선거법이 어렵고 각 사례에 대한 선관위 유권해석이 예상외의 결론인 경우가 많다.
선관위 유권해석에 대해선 '엿장수 마음대로' 혹은 '이현령비현령'이란 불만이 나온다. '야당'에선 선관위가 항상 정권에 굴복해 '여당'에 유리한 판단을 내린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한 야당 소속 의원실 보좌관은 "명절 관련 선거법 위반 사례를 현역 의원들에게 퀴즈로 내면 절반이상 맞추기 힘들 것"이라며 "정치관계법을 누구라도 쉽게 알고 지킬 수 있도록 명확하게 개정해 선관위 유권해석의 여지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