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자는 말이 있다. 어떤 갈등 상황에서 원만한 소통이나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 때 법은 옳고 그름을 나누고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이처럼 나누고 가르는 규정들로 가득한 법 안에 다소 이질적인 개념이 있다. 바로 화해다. 민법은 당사자가 분쟁을 중지하고 상호 양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권리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화해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 화해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기관이 있다. 민법상 화해가 행정법 체계에서는 조정이 되는데, 국민권익위원회는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공공기관까지 아우르는 사회적 갈등 조정 권한을 가진 최고 국가옴부즈만 기관이다. 부패방지권익위법은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크거나 다수인이 관련된 고충민원의 신속하고 공정한 해결을 위해 조정을 할 수 있고, 조정은 민법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원장으로 일한 지난 1년여 간 수많은 조정이 있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조정들이 있다. 하나같이 수많은 민원인들과 다수의 기관들이 복잡한 이해관계로 실타래처럼 엉켜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미제이자 난제였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은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로 큰 희생을 치르고 수복했지만, 이후 주인 없는 땅으로 방치됐다. 황무지를 개간한 주민들은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경작권은 불법적으로 거래됐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현동은 조선 후기 세도가의 집터였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파와 조선식산은행의 소유였고, 미군정기에는 미국 대사관 부속건물 부지였다. 이후 기업이 인수했지만 규제에 묶여 개발되지 못하고 금단의 땅으로 남아있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희망농장은 1970년대 정부 이주정책에 따라 한센인 집단주거지역으로 조성됐는데 이후 적절한 관리와 지원이 이행되지 않았고, 노후화된 계사와 오염된 하수시설, 폐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대변되는 절망의 마을이 됐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정으로 70년 주인 없는 땅이었던 해안면은 통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마을로, 100년 동안 세도가와 친일파와 외세가 점유했던 송현동은 시민의 공원으로, 40년 절망의 경주시 한센인 집단촌은 진정한 희망농장으로 거듭나게 됐다. 단순한 당사자 간 화해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다. 국민의 화해, 역사의 화해다.
조정에서는 모두가 옳고 모두가 승자다. 윈윈이고 상생이다. 그래서 때때로 조정회의는 당사자 모두가 하나가 돼 함께 울고 웃는 축제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으면 신문고를 찾았다. 어렵고 복잡한 갈등 앞에서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께서는 현대판 신문고인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주시길 당부 드린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집단민원조정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적, 국민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갈등을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조정의 절차와 기능을 구체화하고 구속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이다. 앞으로 갈등이 있는 곳에서는 법대로 하자가 아니라 조정대로 하자는 말이 들리기를 바란다.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