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냐아옹."
적막한 폐허에서 가냘픈 생(生)의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이 닿은 곳엔 고양이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까만데 뒷발만 하얀 녀석(까망이)은 꽤 말랐다. 얼룩무늬에 꼬리가 짧은 녀석(얼룩이)은 통통했다. 반은 회색, 반은 하얀 고양이(회동이)는 눈치만 살살 봤다. 이 녀석이 울보였다. 계속해서 "냐앙, 냐아옹" 이랬다. 무언가 바라는 소린데.
빨간 띠로 '위험, 안전제일'이라 둘러쳐진 그 공간 안엔, 그 말뜻이 뭔지 알 턱이 없는 생명체만 그리 남아 있었다. 왜 왔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세 녀석의 동공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눈으로 인사한 뒤 준비해 간 간식 캔을 하나 놓아줬다.
까망이가 먼저 와서 냠냠 먹었다. 건너편에 있는 돌로 된 연석에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지켜봤다. 비가 부슬부슬 왔던 터라 길바닥이 촉촉하게 반짝거렸다. '셋이나 되는 줄 알았으면 더 사 올걸', 후회하는데 까망이가 다 안 먹고 총총 떠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어 얼룩이가 먹었다. 이번엔 다 먹겠네 싶었는데, 회동이 몫까지 남기는 게 아닌가.
자그만 캔 하나도 셋이 나눠 먹는구나, 사람들이 다 떠난 텅 빈 빌라 주차장에 덩그러니 놓인 고양이들이 사는 법이 그랬다. 인근엔 다행히 누군가 밥을 주고 있는 흔적이 보였다. 더위와 비를 피하기 위한 집도 있었다. 아마 이 지역 캣맘이리라 짐작했다.
여긴 경기도 광명시의 재개발구역 중 하나였다. 3월 말까지 주민들이 다 떠난 터라 동네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집마다 위험을 알리는 붉은 테이프가 둘려 있었고, 벽돌 같은 건물 잔해며 쓰레기 같은 것들이 흔히 굴러다녔다. 움직이는 건 공사 노동자들, 지나가는 차들, 그리고 갈라진 콘크리트 사이로 고갤 내민 이름 모를 초록빛 식물뿐이었다. 이미 펜스 안쪽에선 건물 부수는 소리가 쾅쾅 울렸다. 재개발이 시작된 거였다.
17일 오후 여길 찾은 건, 그 동네 고양이들 때문이었다. 비영리단체인 '광명 길고양이 친구들' 소속 캣맘 제보를 받았다. 재건축 단지에 남은 고양이들을 살려달라고 했다. 가보지 않고도 이미 장면이 그려졌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그곳이 삶의 터전이다. 쉬이 떠나지 않고, 강제로 옮겨도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아무 데서나 사는 길 위의 삶이 아니라, 함께 사는 '동네 고양이'인 게다.
그런데 그 동네에 갑자기 사람이 떠나고, 중장비가 들어와 건물을 부수고, 고양이들은 영문을 알 리 없다. 광명 재개발구역도 무려 15구역에 달하니, 그 안에 수많은 고양이가 남았다. 이들을 돌보는 캣맘 오지영씨는 "구역 한 곳당 100마리 정도라 아마 최소 1000마리 이상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캣맘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가만히 두면 위험하니까. 실제 건물이 무너져 어미와 새끼 고양이가 같이 매몰되는 일도 있었으니까. 그러니 밥자리도 옮기고, 입양도 50~60마리 보냈고, 사비를 털어 치료도 해줬으나 개인이 다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캣맘이 쓰던 주택 하나만, 쉼터로 삼아 아픈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는 다행히 조합 측에서 양해해줬으나, 그마저도 허용된 건 6월 말까지. 장소를 다시 옮겨야 하지만 전기, 수도가 다 끊긴 터라 돌볼 방법이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텅 빈 골목길을 지나 쉼터로 향했다. 길목마다 이어진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은 열려 있고, 관리 안 된 수풀은 무성했으며, 벽돌 조각이나 찢어진 상자나 비닐봉지 쓰레기 같은 것들이 뒤섞여 굴러다녔다. 사람이 다 떠난 골목길에 홀로 걷자니, 을씨년스럽달까. 때마침 빗방울이 톡톡 떨어져 얼굴이며 손목에 닿아 차가웠다.
쉼터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양이들을 돌보기 위한 사료며 이동장 같은 것들이 눈에 띄었다. 문을 한 번 더 열자, 고양이 두 마리가 반겨줬다. "안녕", 하고 인사하자 치즈색 고양이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무릎 옆에 가만히 기댔다.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니 귀를 씰룩거렸다. 모처럼 따뜻해서 좋았다. 살아 있는 존재였다.
집 밖을 나와 다시 길을 걸었다. 작은 풀 뒤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던 까만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초록빛에 수염이 희고 길었다. 오른쪽 귀가 잘려있는 걸 보니 중성화도 돼 있었다. 녀석은 날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빠르게 도망쳐서 사라졌다.
고양이들은 회색빛 골목에 그리 구석구석 숨어 있었고, 앉아 쉬었고, 불안한 듯 빠르게 돌아다녔다. 사람이 떠났어도, 굉음이 하루 내내 들려와도, 공사장 먼지가 흩뿌려져도, 잔해물들이 떨어져도. 그곳이 여전히 우리 집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 고양이들을 어찌 살려야 할까.
광명시청에 어떤 조치를 하고 있는지 문의했다. 김명숙 동물복지팀장은 "고양이들의 계류장소를 재건축 조합에 요청하고, 밥자리를 옮길 수 있게 해주고, 방호벽 치면 10m 간격으로 생태 이동 통로를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광명 길고양이 친구들 캣맘들과 회의한 결과란다. 차츰 철거하니, 빠져나올 수 있게 돕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번듯한 광명시 이야기와는 달리, 캣맘들은 "계속되는 요청에도 광명시가 묵묵부답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했다.
캣맘 오지영씨는 "계류장소도 마련해준다고 해놓고 아무것도 안 해줬고, 민원을 계속 넣어도 응답이 없다"고 했다. 철산역 인근 평생학습원 지하 공간도 빌려주겠다고 해놓고, 결국 안 해줬다고 했다.
동물복지팀에 요청하면 도시재생과에서 할 일이라 하고, 도시재생과에 물으면 재건축 조합에 함부로 요구할 수 없다며 미룬단다.
그러는 동안에도 매일 건물은 무너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재건축 구역 고양이들을 돌봐줄 캣맘 봉사자들도 5명 이하로 줄었다. 오씨는 "이주해서 방사해도 다 돌아와 있고, 방법도 몰라 캣맘들도 우왕좌왕했었다"며 "나라에서 같이 해야지, 개인이 도저히 할 일이 아니다 싶었다"고 했다.
캣맘 신혜연씨도 "아이들 밥자리는 어떻게든 덜 위험한 곳으로 옮기려 애쓰는데, 아픈 아이들 돌볼 수 있는 쉼터만이라도 제공해달라고 부탁해도 광명시는 늘 묵묵부답"이라며 "이곳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려달라"며 간청했다.
카라가 발간한 '도시정비구역 길고양이 보호활동 사례집'엔 이들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 절차가 잘 나와 있다. 실제 카라가 6년 동안 재개발지역 길고양이 이주 및 보호를 위해 힘썼던 이야기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강하단 거다. 그러니 마구 포획해서 이주 예정지에 방사하는, 강제 이주는 바람직하지 않다. 당황한 고양이들이 귀소하려고 많은 도로를 건너다 로드킬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러니 잘 살던 고양이를, 민원 등을 이유로 멋대로 다른 곳에 옮기는 건 동물 학대다.
원칙은 시간을 두고 밥자리를 옮겨, 스스로 이주 예정지로 이동하게 하는 것,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이주 예정지로 적합한 곳은 밥자리가 있거나 설치 예정인 곳, 그리고 여기 사는 고양이들도 중성화가 돼 있는 곳이 좋다. 재개발 구역서 가까워 고양이가 자발적으로 이주할 수 있는 곳이 좋다.
고양이들의 자발적 이주가 어려울 땐 '계류장'을 설치하는 방법이 있다. 이주해야 하는 곳에 계류장을 설치해, 강제로 적응을 시키는 거다. 이때 먹이와 물, 숨집과 화장실이 있어야 하고 청소할 수 있는 관리자도 필요하다.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난 뒤, 계류장 문을 열어둔다. 방사 이후에도 관찰,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다만, 이는 자발적 이주가 어려울 때 한한, 차선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