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소곱창전골과 인문학

이병철 문학평론가(시인)
2022.09.22 05:00
이병철 문학평론가(시인)

얼마 전 새 책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를 냈다. 제목 그대로다. 대학교 시간강사가 생계를 위해 배달 라이더 하는 이야기다. 홍보도 할 겸 첫 배달과 마지막 배달 음식 주문하신 분께 책을 선물로 드리기로 했다. 2학기 개강일이던 9월 1일 저녁, 배달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바로 콜이 울렸다. "소곱창전골 1개, 공기밥 3개. 성결대학교 학생회관 219호."

책 증정 이벤트의 첫 대상이 학생들이라니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학생회관 1층에서 층별 안내도를 보는데, 마음이 복잡해졌다. '219호 국어국문학과'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올라 문을 두드렸다. 남학생 셋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업이 글 쓰는 일인데, 새 책이 나와서 이벤트로 드리고 있어요" 하며 음식과 책을 내밀었다. 학생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요? 저희 국문과예요!" "안 그래도 신기했어요. 저는 국문학 박사 했어요. 맛있게 드세요"

멋쩍게 웃으며 돌아서는 등 뒤로 "감사합니다! 책 잘 읽겠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환한 인사를 뒤로한 채 캄캄한 계단을 내려왔다. 캠퍼스에 쪽빛 저녁이 번져가고 있었다. 어둠과 빛이 섞이는 하늘 아래 기분이 묘했다. 학생들 기분은 또 어떨까. 그들도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함을 느꼈을까. 저 학생들은 시인도 되고, 평론가도 되고, 석사 박사 해서 연구자도 되고, 대학 강단에도 설 것이다. 나처럼은 되지 않아야겠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 및 수당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정 작가는 강의뿐 아니라 준비시간까지 포함해 주 15시간 이상 근로에 대한 보상을 주장하고, 대학은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라며 맞서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소송이 가진 의미는 크고, 아프다. 시간강사는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지만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비정규직이므로 낮은 급여에 4대보험도 되지 않는다. 개정된 강사법은 3년 임용 보장 및 방학 중에도 임금 지급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게 지켜지는 곳은 많지 않다. 대부분 학교들은 강사법의 빈틈을 노려 겸임교수나 초빙교수 등 이름만 '교수'인, 또 다른 형태의 시간강사들을 양산하고 있다.

지난해, 한 학교로부터 겸임교수 제안을 받았다. 산업체 재직증명서를 떼어 오거나 개인사업자로 등록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겸임교수의 경우 4대 보험료나 퇴직금을 대학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계약도 1년 단위로 할 수 있다. 그래서 비용이 많이 드는 시간강사를 줄이고, 겸임교수와 초빙교수를 늘렸다. 그때 조건을 채우지 못해 고사했지만, 다른 강사들은 위장 취업을 해서까지 겸임교수가 됐다. 그렇게라도 대학에 남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강의 시수만 근로 시간으로 인정하고, 강의 준비, 학생들 상담과 과제 피드백, 시험 출제, 성적 입력, 회의, 행정업무는 쳐주지 않는다. 학과 강사 채팅방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교의 공지사항으로 쉴 새 없이 울려댄다. 수업 외에도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급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방학에는 최소한만 지급된다. 통장에 고작 몇만 원이 찍힌 걸 보면 얼굴이 벌게진다.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할 때마다 연회비, 심사비 등 수십만 원이 든다. 대학에 임용지원서류를 제출할 때마다 각종 증명서를 3개월 이내 발급한 것으로 새로 내야 한다. 그 얼마 안 되는 발급 비용마저도 부담스러운 게 시간강사들의 처지다. 자기도 힘들면서 주머니 사정 곤란한 학생들 밥 사주고 책 사준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 공부했는데 빈털터리다. 학자는 청빈해야 한다지만 청빈과 극빈은 다른 이야기다. 학부 시절 학자금 대출을 아직도 갚고 있다. 인문학과들은 통폐합되고, 강의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한국연구재단 지원 사업은 이공계에만 편중되어 있다. 인문학을 전공하면 굶어 죽는데, 누가 인문학을 하겠는가?

얼마 전 나는 한 학교의 비전임 초빙교수가 됐다. 시간강사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하다고 답하면서 씁쓸했다. 국문학 박사가 스쿠터를 타고 국문학과에 소곱창전골을 배달하는 일은 이제 더 흔해질 것이고, 인문학은 저녁처럼 캄캄히 저물 것이다. 다시 해가 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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