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상도례에 대한 형법 개정은 과거 국회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21대 국회 들어서도 법안 3건이 발의됐지만 개정은 불투명하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현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관련 개정안이 처음 제출된 것은 1992년 14대 국회 당시다. 정부가 그 해 제출한 형법 전부개정안에 친족간 범죄를 친고죄로,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간 범죄를 필요적 형면제로 전환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당시 개정안이 친족상도례뿐 아니라 형법 전체를 손보는 내용이었던 탓에 시행 과정에서 혼란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국회는 결국 부분개정안을 대안으로 냈고 친족상도례 관련 조항은 사실상 개정 대상에서 빠졌다.
개정안은 19·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무관심 속에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14년 대표발의자로 나선 최동익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성년후견인이 권한을 남용해 피성년후견인에게 재산범죄를 저지른 경우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남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미성년자 등 모든 피후견인이 피해자인 경우 친족상도례를 배제한다는 개정안을 냈지만 법안 폐기를 피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이 친족상도례에 대한 형법 개정안을 지난해 6~7월 각각 발의했다. 방송인 박수홍씨의 사연이 같은 해 3월 알려진 직후다.
이성만 의원은 친족상도례를 사실상 전면 폐지해 친족간 범죄에 형을 면제할 수 없도록 하자는 개정안을 냈다. 이병훈 의원은 친족을 상대로 한 사기·공갈·횡령·배임을 친족상도례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했다. 장철민 의원은 피해자의 지적장애 등 심신장애를 이용해 친족간 재산범죄가 벌어진 경우 친족상도례 적용을 배제하자고 제안했다.
개정안은 이달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다시 언급됐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이 친족상도례 개정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금 사회에선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수홍씨의 사건을 계기로 모처럼 관심이 높아졌지만 형법 개정안 처리는 여전히 더디다. 지난해 9월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일괄 상정된 뒤 1년여 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다. 형법과 별개로 장애인복지법만 개정돼 올해부터 피해자가 장애인인 사기·공갈·횡령·배임 사건에 한해 친족상도례 적용이 배제됐을 뿐이다.
전·현직 국회 보좌진들은 21대 국회에서 형법이 개정될 가능성을 반반으로 본다. 평소의 정치·민생 현안과 거리가 먼 데다 오랜기간 유지된 법 체계를 고치는 게 그만큼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국회의장단 소속 모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A비서관은 "현재 발의된 개정안 3건의 쟁점이 전부 달라 조정이 힘들 수 있다"며 "친족상도례는 2012년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까지 내려 국회에서도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대 국회의원실에서 근무했던 B변호사는 "당시를 돌이키면 형사특별법 개정안에 밀려 친족상도례는 논의가 부족했다"며 "기본법과 법원칙에 대해 국회와 법조계가 상시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족상도례는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다.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법언을 바탕으로 친족 사이의 재산범죄에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가족을 이뤄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던 과거에 친족간 재산범죄는 가족 구성원이 해결하도록 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가족 체제가 무너지고 친족간 유대가 옅어지면서 친족상도례 규정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이달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친족상도례 규정과 관련한 질문에 "지금 사회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헌재도, 대법원도 "친족상도례 필요"…법조계 "도입 이유 있어 폐지는 어려울 것"
방송인 박수홍씨 친형의 횡령 혐의 사건으로 논란이 거세지만 법조계에서는 친족상도례 완전 폐지보다는 일부 개정에 무게를 싣는다. 규정을 폐지할 경우 가족간 문제가 지나치게 형사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배우자나 자녀가 지갑에서 소액의 용돈을 훔친 경우까지 수사기관이 들여다보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2012년 헌법소원 당시 "가정 내부의 문제는 국가형벌권이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책적 고려와 함께 가정의 평온이 형사처벌로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라고 친족상도례 합헌 결정을 낸 게 대표적이다.
대법원 판례는 친족상도례를 더 넓게 해석한다. 대법원은 형법상 재산범죄뿐 아니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재산범죄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2013년 판시했다.
서울 지역의 한 현직 부장검사는 "친족상도례가 국가형벌권을 규정한 형법과 동시에 제정된 것은 공권력이 가정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도입된 이유가 있고 필요성이 있어 지금까지 유지된 것이기 때문에 폐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시대 변화 반영한 법 개정은 필요…반의사불벌죄·친고죄 대안으로
시대 변화를 반영하자면 반의사 불벌죄나 친고죄를 적용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처벌할 수 없는 죄를 말한다.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기소할 수 있다.
김대성 전 서남대 경찰경호학과 부교수는 2016년 '친족상도례 규정의 개정방향' 논문에서 "친족간 재산범죄의 피해자는 범인의 처벌을 희망하더라도 고소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고소처럼 처벌을 위한 피해자의 적극적인 언동이 친족사회에서 반인륜적이거나 몰인정한 행위로 취급돼 가정이나 친족의 평온을 깨트릴 수 있는 만큼 반의사 불벌죄가 친족상도례 입법취지와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의사불벌죄는 우선 국가기관이 가정 문제에 개입한 뒤 피해자 의사에 따라 기소하지 않는 것"이라며 "부모가 자녀의 행위를 탓하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국가기관이 우선적으로 가족 문턱을 넘는 반의사 불벌죄보다는 피해자가 고소하면 처벌하는 친고죄 적용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반의사 불벌이든 친고죄든 친족상도례를 손봐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이라며 "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이자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가족을 무너뜨리는 부작용은 해결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부모가 범인도피를 도와주거나 증거를 인멸해도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하더라."
지난해 4월 반포한강공원에서 의대생 A씨가 친구 B씨와 술을 마신 뒤 인근 지역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강 의대생 사망사고' 당시 친족상도례에 대한 갑론을박이 불거졌다.
당시 A씨 유족은 용의자로 지목된 B씨가 사고 발생 당시 착용했던 옷과 신발 등을 B씨 부모가 버린 게 증거인멸에 해당해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죄를 물을 수 없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B씨에 대한 고소 사건은 이와 별도로 수사기관이 무혐의 취지로 종결했다.
실제 범죄를 저지른 자녀를 두둔하기 위해 범죄 행위에 쓰인 증거를 인멸하면 죄를 묻지 않는 것은 맞다. 하지만 최근 방송인 박수홍 친형의 횡령 혐의 사건을 계기로 다시 불거진 지난해 한강 의대생 사건에서 옷과 신발을 버린 행위가 친족상도례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아니다'다.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는 어원 그대로 친족(親族)간(相) 재산범죄(盜:도둑 도)에 대한 특례를 의미한다. 재산범죄 중에서도 친족 사이에 일어난 절도·사기·공갈·횡령·배임·장물죄에 적용된다. 강도죄나 손괴죄는 친족상도례에서 제외된다.
일각에서는 형법상 범인은닉과 증거인멸 등에 대해서도 친족간 특례를 인정하고 있는 만큼 넓은 범위의 친족상도례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이 경우는 범죄 자체가 애초에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하되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와 개념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한 로스쿨 형법 교수는 "친족상도례는 범죄가 성립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법이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형을 면제하거나 친고죄를 적용하자는 개념"이라며 "친족간 특례는 이와 달리 가족이기 때문에 적법한 행위를 기대하기 어려워 범죄 구성 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면책사유라고도 한다. 범죄를 저지른 가족을 도와 증거를 인멸하거나 숨겨주는 게 충분히 비난받을 수 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합리적 행위를 기대할 수 없어 죄를 묻기가 어렵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