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잠자리·양·아이스·고추…무슨 말인지 아세요? [정경훈의 검찰聽(청)]

정경훈 기자
2023.02.15 04:00
[편집자주] 불이 꺼지지 않는 검찰청의 24시.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기사에 담을 수 없었던 얘기를 기록합니다.
/사진=뉴스1

"방위사업 비리 브로커들은 헬기나 전투기를 '잠자리', '양' 같은 은어로 부른다. 이것도 시시각각 바뀐다. 검찰이 신(神)도 아니고 피의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은어를 무슨 수로 영장청구서에 기재할 수 있겠나."

대법원이 휴대전화 사용 내역 등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하기 전 압수물에 해당하는 '검색어'를 법원에 써내야 한다는 내용으로 대법원 규칙 개정을 추진하는 데 대해 검찰의 우려가 크다. 범죄자들 사이에선 각종 은어로 소통을 하는데, 수사 초기에 이를 알아내기는 불가능한 데다 피의자가 검찰의 수사 계획을 눈치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이 다음달 14일까지 입법예고 중인 '형사소송규칙'(대법원 규칙) 개정안에는 수사기관이 컴퓨터·휴대전화 등에 저장된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하려면 '분석에 사용할 검색어'와 '검색대상 기간 등 집행계획'을 영장청구서에 기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는 개별 검색어를 청구서에 기재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은 사생활의 비밀과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높아 특별히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개정 사유를 밝혔다.

개정안에는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압수수색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검찰청은 지난 9일 입법예고 공문을 받자마자 일선 검찰청을 상대로 의견을 취합했는데, 압수물 키워드를 영장청구서에 미리 써내기는 불가능하다는 반응이 다수였다고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범인들이 보안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은어·암호다. 특정 회사·업계·집단에서 쓰는 용어를 검찰이 예상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마약사범들은 마약을 '아이스'나 '풀떼기'로 칭한다. 자음·모음을 분리해 기재하는 등 변형도 다양하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일부러 엉뚱한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많다.

방위사업 비리 사건도 특수한 업계에서 일어나는 만큼 타격을 받을 수사 분야로 꼽힌다. 이를테면 2021년 검찰이 수사했던 군 불용물자(군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 입찰비리 의혹 사건에서 브로커 조직은 로비 대상인 육군사령부를 '큰집', UH-60 블랙호크를 '큰 잠자리', 500MD 헬기를 '작은잠자리', F-5 전투기를 '양', 호크미사일을 '고추'라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당시 조사에서 은어를 해독하기 위해 상당 기간 각종 문서를 분석했다. 치밀한 조사를 거쳐야 파악할 수 있는 업계의 은어를 미리 알고 영장 청구서에 써내기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현직 검사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은어를 영장청구서에 기재하지 않고 은어가 쓰인 문자메시지를 압수할 경우 위법 수집 증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은어를 많이 사용하는 방산비리나 마약 수사 등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한 지방검찰청의 다른 부장검사도 "모음이나 자음 한글자만 달라져도 검색어가 다른 파일이 수백개가 나온다"며 "이런 경우 영장을 다시 받아야 하는데 증거가 인멸되거나 수사기밀이 유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미래 먹을거리를 경쟁국 기업에 팔아 넘기는 첨단기술 유출범죄 수사에 미칠 영향도 클 것으로 본다. 기술 유출 수사는 보통 국가정보원이나 기업에서 나오는 첩보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수사기관은 첩보 내용을 명확히 하고 브로커들 활동을 확인하기 위해 수사 초기 단계에서 먼저 이메일 내역을 압수·분석하고 어느 정도 혐의가 확인되면 추가 영장을 발부받아 컴퓨터·휴대전화까지 뒤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수사 초기 단계에 이뤄지는 이메일 압수수색은 저장 서버를 운영하는 포털사이트를 대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수사 정보가 브로커들에게 새어나갈 가능성이 극히 낮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라 법원이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 당사자인 브로커들을 불러 심문할 경우 오히려 공범들이 도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지역의 한 현직 검사는 "해외 기업의 경우엔 압수수색이 불가능해 피의자들이 국내에 있을 때 증거를 확보하는 게 핵심인데 사전에 도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격"이라며 "기술 유출 범죄 등 '제3자 보관 압수물' 확보가 중요한 사건 수사가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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