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집무실서 성관계..."내 행동 끔찍" 뒤늦게 후회한 이 대통령[뉴스속오늘]

구경민 기자
2023.08.17 05:3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저와 르윈스키의 관계는 적절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옳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저 혼자 책임져야할 부분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예를 보여준다고 봅니다. 제 아내를 포함한 여러분들에게 잘못을 지절렀습니다. 정말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1998년 8월 17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TV로 방영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이 전 백악관 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 '적절하지 못한 관계'를 가졌다고 시인하고 가족, 친구와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이로써 미국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 사원이었던 르윈스키와 폰섹스, 성관계 등을 가진 사실을 부인했으나 독립검사 케네스 스타의 집요한 추적 끝에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이 사건은 '지퍼게이트'로 불린다.

대통령 비서실장 인턴직원과 사랑에 빠진 대통령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1995년 7월. 대통령 비서실장의 인턴 직원으로 백악관에 입사한 르윈스키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짝사랑한다"고 고백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2살에 불과했다. 이 계기로 클린턴 대통령은 르윈스키에게 호감을 느꼈고 둘은 부적절한 육체적인 관계를 시작했다.

더이상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클린턴 대통령은 이듬해 2월 르윈스키에게 관계를 끝내자고 했다. 르윈스키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다시 육체적인 관계를 이어갔다.

인턴이 대통령 집무실에 자주 드나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백악관 비서실은 르윈스키를 국방부로 발령했다. 그럼에도 둘은 전화로 외설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관계를 이어나갔다.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르윈스키는 1997년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다. 이 계기로 또 두 사람은 육체적인 관계를 지속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해 3월29일을 마지막으로 둘의 관계는 끝이 났다.

대통령 체액이 드레스...성관계 '사실로' 드러나

이런 둘의 관계는 1997년 12월 터졌다. 르윈스키가 직장 선배인 린다 트립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 트립은 이를 녹음해 22시간 분량의 녹음 테이프를 특별검사인 케네스 스타에게 전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처음에는 완강하게 부인했으나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은 체액을 검사한 결과 DNA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오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트립은 자신의 폭로를 두고 "애국적인 일"이라고 했다.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의 스캔들을 폭로한 트립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부는 그녀가 법의 지배를 지지한 영웅으로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친구를 배신한 모사꾼으로 묘사했다. 트립은 2020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8년 1월 맨 처음 성추문이 불거졌을 때 법정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는 성관계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클린턴 대통령이 위증을 했고, 르윈스키에게도 거짓 증언을 종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특검수사가 본격화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성추문 자체보다는 위증을 교사했다는 점이 클린턴 대통령의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검팀은 르윈스키에게 증거를 들이대며 연방대배심에서 증언하지 않으면 위증죄로 기소하겠다고 위협했다. 르윈스키는 결국 기존 증언을 번복하고 성관계를 시인했다.

이에 클린턴 대통령도 연방대배심에 이어 대국민담화를 통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시인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본인의 형사적 혐의에 대해 연방대배심에서 증언하기는 미국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특검팀은 수사 과정에서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은 정액이 클린턴 대통령의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미 연방수사국(FBI) 비밀요원들이 백악관을 극비리에 방문해 클린턴 전 대통령의 혈액을 채취하도록 하기까지 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예정된 저녁 식사 도중 화장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한 채 다른 방에서 혈액샘플 채취에 응해야 했다.

특검팀은 같은 해 9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위증, 사법방해, 권력남용 등 11개 항의 탄핵사유에 해당한다는 특별보고서를 하원에 제출했다.

하원은 10월 8일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 개시를 의결했다. 그러나 11월 3일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이 승리해 탄핵을 주도한 공화당 뉴트 깅리치 의장이 사임하는 후폭풍이 일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을 통해 "깊은 후회"를 표명하고 사임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원은 12월 12∼13일 법사위원회에서 위증, 사법방해, 권력남용 등 4개 혐의로 탄핵안을 가결한 데 이어 19일 본회의에서 위증 및 사법방해 혐의로 미국 헌정사상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1999년 2월 상원이 탄핵안을 부결시키면서 클린턴 대통령은 집권 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고 2001년 1월20일 퇴임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후 2001년 퇴임을 앞두고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그릇되거나 회피적 진술을 했다고 인정하는 대신 기소를 면제받기로 특검 측과 합의해 퇴임 후 형사기소를 피할 수 있었다.

애초 사실관계를 부인하던 클린턴 대통령은 1998년 8월17일 미 전역에 생중계된 TV 연설을 통해 "르윈스키와 적절하지 않은 관계를 가졌고, 그 관계는 잘못이었다"고 사과했다. 이어서 "나의 심각한 판단착오였다"며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누구에게도 거짓말을 하라거나, 증거를 숨기라거나 등 불법 행동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재임 당시 불거진 성추문과 관련해 "내가 한 행동은 끔찍했다"며 후회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다. 변호사이던 힐러리는 남편이 성 추문 사건에 휘말리자 법률대리인을 자처하기까지 했다. 남편이 퇴임하자 힐러리는 정치를 시작했다. 상원의원을 거쳐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다. 이후 대통령 선거 후보로까지 나섰지만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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