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들 갇혀 있다고?"…교민의 '해결사', 中공무원과 싸운 사연

정세진 기자
2024.01.01 05:48

[베테랑]강태원 서울 중부경찰서 공공안녕정보외사과 외사계장(경감)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강 경감은 한국 대사관 경찰주재관으로 중국 당국에 체포·구금된 우리 국민의 영사면회를 위해 베이징에서 신장위구르 자치구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살인 혐의를 받는 한국인의 영사면회를 위해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 공안 관계자를 만나는 강 경감. /사진=강태원 경감
강 경감은 한국 대사관 경찰주재관으로 중국 당국에 체포·구금된 우리 국민의 영사면회를 위해 베이징에서 신장위구르 자치구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살인 혐의를 받는 한국인의 영사면회를 위해 신장 위구르 자치 정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는 강 경감. /사진=강태원 경감

"왜 격리 해제를 안 해주냐."

2022년 9월5일 오후 11시쯤. 베이징시 대흥구의 한 임대아파트 현관. 한국 경찰이 대흥구 방역 책임자에게 유창한 중국어로 강력하게 항의했다. 외교관과 방역 책임자의 대화는 늦은 밤 아파트 주민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격했다.

이 아파트는 베이징시 당국이 지정한 코로나19(COVID-19) 격리시설이었다. 약 1시간 전쯤 베이징 한국대사관에는 '오후 2시쯤 격리가 끝났어야 할 한국인 33명이 아직 갇혀 있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대사관 경찰 주재관(사건·사고 담당 영사)이었던 강태원 경감(56)은 민원 접수 즉시 30㎞를 운전해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모든 해외 입국자들을 지정시설에서 10일간 의무 격리시켰다. 격리 기간 식비는 자가 부담해야 하는데 결제 방식 등 시스템 문제로 격리해제가 늦어졌다는 게 방역책임자의 설명이었다. 당시 한국인 격리자들은 저녁식사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

강 경감은 격리시설 주변의 편의점을 돌며 삼각김밥, 빵, 음료수, 초콜릿 등을 사서 33봉지에 나눠 담아 격리자들에게 전달했다. 한국인 33명은 다음날 오전에서야 격리가 해제됐다.

2022년 9월5일 오후 11시쯤. 베이징시 대흥구 격리 시설로 지정된 임대아파트 앞에서 한국인 격리자들의 민원 해결을 위해 직원들과 대화 중인 강태원 경감./사진=강태원 경감 제공
2022년 9월5일 오후 11시쯤. 베이징시 대흥구 격리 시설로 지정된 임대아파트에서 한국인 격리자들 위해 삼각김밥 등을 전달하는 한국 대사관 직원들./사진=강태원 경감 제공

베이징 한인회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소통방엔 '400여명의 격리자들의 국적이 다양했는데 격리해제 지연을 항의하러 현장에 와 준 외교관은 한국 외교관 강 영사밖에 없었다'는 칭찬글이 잇따랐다.

강 경감은 29년차 베테랑 경찰관이다. 그는 경찰 내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꼽힌다. 15년간 외사업무에 종사하며 경찰청 중국 대사관 협력관, 중국 경찰주재관(칭다오·베이징 각 3년 총 6년) 등을 역임해서다. 수사관으로도 유명 연예인의 마약투약 혐의와 첨단기술 해외 유출을 적발하는 등 성과를 냈다.

지난달 8일 적극 행정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9회 대한민국 공무원상을 받은 강태원 경감. /사진=강태원 경감 제공

베이징시에 부임했을 당시 7년간 실종 상태였던 한국 국민을 찾은 것도 강 경감의 경험 덕분이었다. 2012년 12월29일 김모씨(당시 29세·남성)는 홀로 중국 칭다오에 입국한 뒤 실종됐다. 김씨는 가벼운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한국 경찰의 수사 협조 요청을 받은 중국 공안은 김씨를 찾지 못했다. 강 경감은 김씨가 교도소나 정신병원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응급구조 업무를 담당하는 베이징시 민정국에 협조를 요청했다.

민정국 담당자를 통해 김씨가 2014년부터 허베이성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대인기피 증세로 대화를 못 했고 신분증도 없어 중국 당국이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김씨를 촬영한 동영상을 받아 본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맞다"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7월, 실종 7년7개월 만에 김씨는 강 경감 덕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중국 공안으로부터 사기 혐의를 받아 16년간 출국이 금지돼 있었던 한국인 A씨(78·남)도 강 경감의 노력으로 귀국을 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중국 수사 담당자는 "A씨 사건은 내가 고등학생 때 일어난 일"이라며 수사를 지지부진 지연하고 있었다. 강 경감은 A씨가 지병이 있어 건강 상태가 안좋았던 점 등을 이유로 들며 인권침해를 주장하고 교섭했다. 중국 당국은 이례적으로 사건 종결 없이 A씨 귀국에 동의했다. 이 일로 강 경감은 베이징 교민사회에서 '해결사'라는 말을 듣게 됐다.

강 경감은 이 같은 그간의 성과 등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제9회 대한민국 공무원상을 받았다. 그는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 대한민국 외교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라며 "15년간 해온 외사업무 경험을 기반으로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잘 전수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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